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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밀리면 ‘한일 관계’ 흔들… 격자외교 기반 전략 다시 짜야[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4-10-19 01:40:00

이시바 총리 명운 달린 日 총선 27일 실시
日 중의원 선거, 한국에 미칠 영향은
‘지한파 총리’로 관계 개선 기대… 선거 뒤 영향력 약해지면 ‘물거품’
美 대선 결과-尹 지지율도 변수로… “실무 협력으로 신뢰 쌓는 게 우선”




27일 일본 중의원(하원) 총선은 ‘지한파’로 분류되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의 신임투표 성격을 띠지만 “여당에 어려운 싸움”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중의원 해산 전 258석을 차지했던 집권 자민당이 이번에 연립여당 공명당(32석)의 도움 없이 전체 465석 중 과반 의석(233석)을 확보할 것이라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단독 과반이 무너지면 ‘이시바 오로시(おろし·끌어내리기)’가 시작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한파 총리’가 취임 직후부터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 총재선거 1차 투표에서 1위로 선전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상이 강경우파 지지를 업고 전면에 나선다면 한일 관계는 단박에 껄끄러워질 수도 있다.

● “과거사 문제 해결 기대 어려워”

이시바 총리 취임 직후 국내에선 양국 최대 쟁점인 과거사 문제에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강제징용 배상금 제3자 변제안 등 선제적 양보 조치를 내놓았다가 거센 반대 여론에 부닥쳤다. 한국 정부는 “물잔의 절반을 채웠으니 나머지 절반은 일본이 채우라”고 촉구했지만,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별다른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이시바 총리는 과거 “위안부 피해자가 납득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해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선거 뒤 자민당 내 지각 변동이 벌어지고 이시바 총리의 영향력이 약화된다면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일 관계는 현상 유지가 최선”이란 관측을 내놨다. 장혜진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민당 내부엔 기시다 전 총리조차도 한국에 너무 내줬다는 불만이 여전하다”며 “이시바 총리도 양보한단 인상을 주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 달 5일(현지 시간) 미국 대선도 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커지고, 상황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이시바 총리는 고질적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일 연락사무소 설치를 공약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어일본학과 교수는 “북-일 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에 속도가 붙는 동안 한국이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美 격자외교 속 전략 재정립해야”

내년 6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될지도 미지수다. 아사바 유키 일본 도시샤대 교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거의 관심이 없는 이슈”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보다는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와 8월 종전 80주년 기념일(한국의 광복절)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끊긴 일본 국빈방문을 추진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20%대 지지율에 갇혀 있는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전문가들은 일본 총선 이후 한일 관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좀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권역 안보동맹 구조를 양자 기반에서 ‘격자형 네트워크’로 전환하는 추세에 맞춰 한일 관계도 전략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미일 공조 외에도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미-일-필리핀 공조 등 ‘격자’의 핵심에 서 있다. 장 선임연구원은 “일본 외교안보 정책에서 한국은 미국과 호주 등에 비하면 후순위로 밀려 있다”고 말했다.

아사바 교수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며 “양국 모두 실익이 크고 손해는 적은 분야에서 실무 차원의 협력으로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