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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단독 과반 어려울 수도”… 비자금 스캔들이 최대 쟁점[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4-10-19 01:40:00

이시바 총리 명운 달린 日 총선 27일 실시… 이시바, 취임 9일만에 중의원 해산
새 총리 선출 기대 효과 노렸지만… 자민당 불법 비자금 문제에 ‘발목’
야당, ‘정권 교체’ 슬로건 내걸고… “비자금 은폐하려 해산” 집중 공격
日 언론 “자민당 유력 지역구 30%”… 단독 과반 실패 땐 총리 기반 약화




《“정권 교체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집권 자민당 단독 과반 확보는 어려울 수 있다.”

일본에서 27일 치러지는 중의원(하원) 총선을 두고 일본 언론들은 선거전 중반 판세를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취임 한 달도 안 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의 정치적 명운이 달린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은 현재 고전하고 있다. 2012년 정권 탈환 뒤 12년 만에 가장 적은 의석 확보에 머무를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무엇보다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 내 치열한 총재 선거에서 이겨 새 총리로 취임했지만 내각 및 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컨벤션 효과’를 제대로 못 누리고 있다. 야당들이 자민당의 파벌 비자금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총선에서 자민당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든다면 가뜩이나 당내 비주류인 이시바 총리의 기반은 더욱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3년 만에 치러지는 ‘정권 선택 선거’인 일본 총선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



● 자민당 파벌 비자금 문제 최대 쟁점


“돈 문제, 정치자금 보고서 미기재,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깊이 반성하겠다.”

15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며 선거 레이스가 공식적으로 막이 오른 이날, 이시바 총리는 ‘반성’이라는 단어로 첫 거리 연설을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영공 침범을 하고 북한은 거의 매달 미사일을 쏜다. 일본의 독립과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곳은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뿐이다.”

이시바 총리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안보 문제를 꺼내 들며 튼튼한 안보를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이번 선거는 2021년 10월 이후 3년 만에 치러지는 총선이다. 일본 중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를 온전히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에서 중의원 해산은 총리 전권 사항이다. 정권의 정치적 입지가 높아지고 여당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국회를 전격 해산하고 총선을 치르는 게 사실상 관례처럼 여겨진다.

이시바 총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27일 총선 역시 이시바 총리가 꺼내 든 회심의 카드라 볼 수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 자민당 유착 문제, 파벌 비자금 스캔들 등으로 추락한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한 채 불출마 선언 뒤 퇴진했다. 비자금 문제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특히 높아진 가운데 열린 지난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는 1차 투표에서 2위를 기록한 뒤, 결선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익 성향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보상을 꺾었다. 총리 취임 9일 만인 이달 9일 이시바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했다. 새 총리가 선출되면 국민적 기대감이 높아져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오르는 효과를 노리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번 일본 총선의 최대 이슈는 여전히 자민당 파벌 비자금 문제다. 지난해 12월 자민당 최대 파벌인 보수 강경 아베파 등이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고 전현직 장관, 당 간부 등이 깊숙이 관여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자민당을 넘어 일본 정치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 비자금 문제를 둘러싼 개혁이 큰 쟁점으로 부각되며 정치의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이번 총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 ‘보수 성향’ 대표 야당, 공세 강화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비자금을 은폐하려 해산했다. 뒷돈, 뒷돈, 뒷돈의 자민당 정치와 결별하자.”

이시바 총리가 후쿠시마에서 마이크를 잡은 15일,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대표(전 총리)는 도쿄 하치오지시에서 첫 연설에 나섰다. 이곳은 파벌 비자금과 가정연합 스캔들에 동시에 연루된 옛 아베파 거물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전 경제산업상 지역구다. 노다 대표는 자민당 비자금 문제를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서 첫 선거전을 시작했다.

일본에선 1955년 자민당 결성 이래 자민당 이외 정당이 정권을 차지한 게 두 번(총 4년)뿐이다. 일본 야당은 그동안 ‘수권 능력이 부족하다’ ‘정권 교체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 왔다. 그간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 일본공산당 등 이념 성향이 제각각인 일본 야권은 표가 분산돼 거대 여당 자민당과 제대로 겨루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아예 슬로건을 ‘정권 교체가 최대의 정치 개혁’이라고 정했다. 또 지난달 보수 성향인 노다 전 총리를 새 대표로 뽑고 분위기 일신에 나섰다. 2021년 총선 당시 진보 성향을 앞세웠던 입헌민주당은 일본공산당과 제휴해 단일화 효과를 노렸지만, 좌파에 거부감이 강한 중도 유권자들이 외면하며 참패했다.

당초 ‘식상한 고인물’이란 평가도 있었지만, 진보적 색채를 내세우지 않고 총리를 지낸 관록이 드러나면서 ‘노다 대표 카드’는 안정 성향의 중도 보수 유권자에게 어필하고 있다. 노다 대표는 “구린 냄새가 나자, 뚜껑을 덮으려고 한다”며 “자민당은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비자금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 ‘자민 단독 과반 어려워’ 전망 잇따라

선거를 열흘가량 앞두고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자민·공명 연립 정권의 과반 가능성을 높게 점친다. 일단 현 정권 유지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복잡하다.

중의원 전체 465석 중 해산 전 기준 자민당은 247석(53%), 연립여당 공명당을 합친 여당 전체로는 279석(60%)이다. 이시바 총리는 ‘자민·공명 과반 확보’를 공식 목표로 내세웠지만, 일본 정치권에서는 자민당이 단독 과반(233석) 확보에 실패하면 이시바 정권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본다.

현 상황에서 보자면, 자민당 단독 과반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일 여론조사를 통한 정세 분석에서 “전체 289개 선거구 중 자민당 승리가 유력한 곳은 30% 정도에 불과하다”며 “과반에 못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같은 날 “자민·공명이 합쳐 과반은 확보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자민당이 우위인 선거구는 100곳 안팎”이라며 자민당 단독 과반 유지가 초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접전 선거구에서 자민당이 승리하면 단독 과반을 유지할 수는 있다”고 전망했다.

비자금 스캔들을 딛고 자민당이 단독 과반 확보에 성공하면 이시바 총리로서는 향후 정권 운영에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자민당 내 역학 관계로서도 비둘기파 성향의 온건 보수 세력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옛 아베파가 중심인 보수 강경 세력은 비자금 문제 연루에 이어 일부 의원이 공천 배제까지 당한 상황이라 세력 축소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자민당이 과반에 실패하면 이시바 총리 기반 약화를 피하기 어렵다. 최악의 경우 공명당과 합쳐 전체 과반 확보도 못 한다면 일본 정국 전체가 혼돈에 빠질 수 있다. 최근 10년간 ‘자민당 절대 1강’ 체제에선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현재 일본 정국에서 ‘여당 과반 미달’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이럴 경우 군소야당을 끌어들이는 대(大)연립 구성으로 정권 유지는 가능하겠지만, 자민당 장악력은 더욱 약해진다.

자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총리가 바뀌었지만, 자민당에 대한 국민적 분위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야당으로 전락했던 2009년 이후 가장 어려운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은 “이시바 총리가 (비자금에 연루된) 공천 배제 후보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보수 지지자 반발로) 과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렸기 때문”이라며 “비자금 고름을 짜내는 자세로 지지율을 끌어올릴지에 대한 선거 전략도 제대로 짜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이시바 총리, 지지율 딜레마에 빠져

비주류로서 ‘당내 야당’을 자처했던 이시바 총리는 취임 뒤 현실과 타협하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며 지지율이 하락하는 모양새다. 당을 다독이기 위해 발언 및 정책 수위를 조절하면 지지율이 떨어지고, 개혁 목소리를 높이면 당이 반발하는 딜레마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교도통신이 13일 보도한 여론조사에서 이시바 총리 지지율은 42%로 총리로 취임한 이달 1일보다 8.7%포인트나 하락했다. 이시바 총리가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돼 징계받은 의원 12명을 공천하지 않기로 한 대응에 대해서도 71.6%가 ‘불충분하다’고 응답했다. 이시바 총리로서는 예상보다 빠르게 식어가는 기대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선거에 임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3년 전 참패를 당했던 입헌민주당은 의석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요미우리신문은 여론조사 등을 토대로 “현재 98석보다 30석 안팎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럴 경우 향후 대안 세력으로 부상해 수권 가능 여부를 평가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 다만 당장 자민당 정권을 위협할 만큼 다수 의석을 차지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일본 유권자들로서는 집권 시절(2009∼2012년) 잇따른 실정을 거듭하고 동일본대지진(2011년) 대응에 실패한 현 야당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기 때문이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