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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상공 무인기, 제3의 민간단체나 인물이 날려 보냈을 개연성

입력 | 2024-10-20 09:21:00

시판되거나 실전 투입된 적 없는 새 모델인 듯… 일반인도 제작 가능한 수준




러시아군이 운용하는 샤헤드-136 드론. 이번에 평양 상공에 나타난 무인기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모델일개 연성이 커 보인다. [GETTYIMAGES]

방공(防空)은 6·25전쟁 당시 미국의 압도적 공군력에 제대로 혼쭐 난 북한이 전후 군사력 재건에서 가장 공들인 분야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세계에서 가장 밀도가 높다”고 평가한 북한 방공망은 전투기, 지대공미사일, 고사포, 레이더 같은 자산으로 구성돼 있다. 각 무기의 수량도 굉장히 많다. 그러나 단순히 수만 많다고 방공망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순 없다. 중동 최강이라던 이라크의 방공망이 1991년 걸프전쟁 때 다국적군 공습에 제대로 저항도 못 한 채 일주일 만에 궤멸된 것이 이를 설명한다.

1980년대에 멈춘 북한 방공망

현대전에서 방공 작전은 대단히 중요한 영역이다. 군사기술이나 재정 면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분야이기도 하다. 고속으로 하늘을 나는 물체를 쏘아 맞히려면 그만큼 수준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 고난도 기술이 적용된 무기나 장비는 비쌀 수밖에 없다. 가령 대공미사일은 다른 미사일에 비해 구조가 복잡하고 가격도 비싸다. 똑같이 300㎞ 정도를 날아가는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미사일은 1발에 170만 달러(약 23억1000만 원) 정도지만, 비슷한 거리를 날아가는 SM-6 함대공미사일은 450만 달러(약 61억3000만 원)가 넘는다. 이 때문에 북한은 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1980년대 중반부터 방공망을 현대화하지 못했다. 신형 지대공미사일을 개발하거나 구입하기에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북한군이 장거리 방공망에 쓰는 S-200 미사일. [위키피디아]



북한은 S-200(NATO 분류명 SA-5) 미사일 2개 포대로 장거리 방공망을 구축하고 있다. 중거리 방공망은 S-75(SA-2) 미사일 40~50개 포대가, 단거리 방공망은 S-125(SA-3) 미사일 30여 개 포대와 다양한 고사포가 담당한다. 북한 전역의 방공 진지는 600곳이 넘고, 고사포만 해도 1만4000문에 달한다. 이런 방공무기가 가장 빼곡히 배치된 곳이 바로 평양이다. 그런데 세계 최고 밀도의 방공망이 지키는 이른바 ‘혁명의 심장부’에, 그것도 노동당 중앙당사와 김정은 관저가 있는 중구역에 정체불명 무인기가 침투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 측 주장에 따르면 무인기는 10월 3일과 9일, 10일 세 차례에 걸쳐 심야에 평양으로 날아들었다. 북한은 10일 평양 상공에 나타난 무인기를 촬영하고 해당 무인기가 투하한 전단을 수거했지만 격추하지는 못했다. 10월 15일 북한은 “무인기 평양 상공 침범이 한국군 소행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했지만 끝내 무인기 잔해를 공개하지 않았다. 무인기가 적어도 북한 통제가 미치는 지역에 떨어지지 않고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 밀도의 평양 방공망을 뚫고 이른바 ‘최고 존엄’ 머리 위까지 날아간 이 무인기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0월 12일 보도한 평양 상공 무인기(왼쪽)와 거기서 투하됐다는 전단. [뉴스1]


이 무인기의 정체를 추론할 수 있는 단서는 북한이 공개한 열상 카메라 사진뿐이다. 무인기가 전단을 살포한 평양 중구역은 한국 수도권 북부의 민간인 출입 가능 지역에서 직선거리로 160㎞, 서해 공해상에선 직선거리로 70㎞ 정도 떨어진 곳이다. 해당 무인기가 원래 발진한 지점으로 돌아갔다고 가정하면 육상 경로 기준 320㎞ 이상, 해상 경로로는 140㎞ 이상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것이다. 사진 속 무인기의 형상은 한국군이 보유한 어떤 기종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얇고 긴 동체, 큰 후퇴익을 가진 해당 무인기와 가장 비슷해 보이는 모델은 러시아군의 정찰용 무인기 ZALA 421-16EM이다. 물론 이 모델은 민간에 판매되지 않는 기종이다. 비행거리가 짧아 앞서 언급한 장거리 비행 조건을 충족하지도 못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평양 상공에 나타난 무인기는 기존에 시판되거나 실전 투입된 적 없는 새로운 모델일 개연성이 크다.

지난해 민간인이 드론 날려 금강산 촬영하기도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풍선에 파손된 자동차. 그간 북한은 다양한 형태의 대남 선제 도발을 감행했다. [뉴스1]

‌북한은 이번에 무인기를 날려 보낸 주체가 ‘한국 군부 깡패’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6·25전쟁 발발 이후 모든 남북 충돌이 북한의 선제 도발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군이 이 무인기를 날렸을 개연성은 거의 없다. 최근 북한이 25차례 이상 5300개가 넘는 오물풍선을 날려 보냈고 민간 피해도 발생했다. 그럼에도 확전 가능성 때문에 군사분계선(MDL) 근처에서 총알 한 발 쏘지 못하는 것이 한국군이다. 이런 조직이 평양, 그것도 노동당사 상공에 무인기를 띄워 전단을 살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들린다.

‌북한이 공개한 전단 형태도 이 무인기를 날려 보낸 게 한국군이 아님을 말해준다. 우리 군은 북한에 전단을 살포하지 않지만, 실제 그랬다면 국어나 북한 ‘문화어’ 맞춤법을 지킨 정제된 문장이 담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이 공개한 전단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또한 전단 속 문장은 그간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낸 국내 민간단체들 것보다 훨씬 순화된 표현이었고, 종이 재질과 크기, 편집 스타일도 달랐다. 즉 이 전단은 한국군이나 기존 민간단체가 아닌 제3 인물이나 단체가 만들었을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이런 무인기를 만들어 평양까지 보내는 게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쉽다는 게 필자 견해다. 지난해 대구에 사는 한 무인기 동호회원이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만든 무인기를 강원 고성에서 북한으로 날려 보낸 적이 있었다.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무인기는 2시간 동안 금강산과 그 일대 북한군 시설을 촬영하고 다시 휴전선을 넘어 강원 인제의 한 공터에 착륙했다. 해당 동호회 회원들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무인기로 북한 이곳저곳을 촬영했다고 한다. 이들이 제작한 무인기는 EPP(발포폴리프로필렌)라는 경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북한은 물론, 우리 군 레이더에도 탐지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동호회 회원들이 만든 무인기는 프로펠러와 모터, 비행제어장치, 자율비행장치, 배터리까지 모두 인터넷에서 구매한 상용품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런 무인기는 미리 자율비행장치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좌표로 비행경로를 입력하고 띄우면 고장으로 추락하거나 격추되지 않는 한 배터리 힘이 닿는 거리 어디까지든 날아갈 수 있다. 당시 무인기의 북한 침범이 이슈가 됐을 때 “무인기 배터리만 넉넉하면 평양까지도 찍고 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에 북한이 공개한 사진 속 무인기에도 민간인이 제작했을 것으로 보이는 단서가 있었다. ‘전단 살포통’에서 3D(3차원) 프린터 사출 방식으로 급조한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이제 수백만 원만 주면 제법 성능이 괜찮은 개인용 3D 프린터를 구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무인기 부품과 설계도도 얻을 수 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평양에 무인기를 보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개인용 3D 프린터로도 무인기 제작 가능

문제는 누군가 작심하고 무인기를 만들어 평양으로 날리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10여 년 전부터 민간인이 만든 소형무인기가 휴전선을 넘나들어도, 북한이 여러 차례 국내 곳곳에 무인기를 날려 보내도 우리 군과 북한군은 이를 탐지하지 못했다. 드론은 일반 항공기보다 체적과 레이더 반사 면적이 작고, 비행 고도도 낮다. 그만큼 일반 레이더로 탐지·추적하기 매우 어렵다. 반사 면적이 작으니 무인기가 레이더 근처로 접근하기 전까진 탐지가 안 된다. 지면 가까이에서 날기 때문에 운 좋게 탐지해도 지형이나 구름 등 엉뚱한 물체에 레이더 전파가 반사된 클러터(clutter)에 파묻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인기 같은 소형 표적 탐지는 파장이 짧고 주파수가 높은 레이더가 적합하다. X밴드나 Ku밴드, 밀리미터파가 카운터 드론 레이더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대공 레이더는 대부분 파장이 길고 주파수가 낮은 C밴드나 VHF를 사용한다. 최근 북한이 선보인 ‘북한판 S-400’ ‘별찌-1-2’에서 러시아 ‘플랩 리드’와 유사한 레이더가 식별되긴 했다. 이 레이더는 단파장·고주파수에 해당되는 I밴드와 J밴드를 사용하지만, 기본적으로 대공감시레이더가 아닌 화기관제레이더라서 365일 24시간 내내 켜놓고 있을 수 없다.

북한이 평양으로 날아드는 소형무인기를 막으려면 앞서 언급한 단파장·고주파수 레이더를 중첩 설치해야 한다. 이런 레이더는 출력 대비 탐지거리가 짧기 때문에 많은 수를 촘촘히 깔아야 한다. 또한 여러 레이더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여기에 많은 비용과 수준 높은 기술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다시 말해 현재 북한의 방공 능력으로는 평양 중심부로 날아드는 무인기를 탐지·대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북한 방공망 수준이 갑자기 높아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현 시점 세계 최고 방공망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러시아 모스크바조차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드론에 뚫리는 마당이다. 평양이 드론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이번 무인기 사건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전단을 싣고 날아온 무인기가 다음에는 어떤 물건을 싣고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민간인도 평양 중심부까지 무인기를 날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무인기를 날리는 주체가 파괴 또는 살상 의도를 갖고 있다면 여기에 폭발성 물질을 실어 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군용 폭약을 민간인이 구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재료’가 지천에 널린 게 현실이다. 제조업 사업장에 흔히 있는 CNC(컴퓨터 수치 제어) 공작기계를 사용하면 일상적으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관통 효과가 있는 폭발성 탄두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지금 우크라이나군은 이 같은 ‘홈메이드 전투 드론’을 민간인들로부터 기증받아 실전에서 대량 사용하고 있다.

민간 장거리 살상 무기 위협에 대응해야

민간인이 시판 기술과 부품, 재료로 장거리 살상 무기를 손쉽게 마련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적절한 대응 방안이 절실하다. 북한 안팎에는 김정은 정권에 억울하게 가족 친지를 잃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복수심에 불타는 이들에게 무인기는 그야말로 매력적인 보복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번 평양 무인기 사건으로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어떤 개인의 돌발 행동이 한반도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올 수도 있다.

무인기 관련 사건 때마다 제대로 탐지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한국군의 모습에서 확인되듯이, 이런 무인기는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 과거 ‘RO(혁명 조직) 사건’ 때 이른바 혁명을 모의했던 자들도 시판 에어소프트건으로 무기를 만든 뒤 이것으로 경찰 무기를 탈취하려 했다. 당시 거론된 에어소프트건은 기껏해야 얼굴과 팔 등 노출된 신체 부위에 부상을 입힐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 무인기와 사제 폭발물이 결합된 장비는 김정은 관저는 물론, 한국 용산이나 여의도, 한남동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개인이 남북 최고지도부를 공격해 한반도를 전화(戰火)에 휩싸이게 하거나 대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부디 정부 당국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무인기 규제와 저고도 방공 시스템 재정비에 나서주길 바란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1호에 실렸습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