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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동행명령장 전에 핵심증거부터 내놔야 [김지현의 정치언락]

입력 | 2024-10-21 14:00:00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22대 국정감사 첫날인 10월 7일 서울 성동구에 있는 21그램 사무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윤 의원 등 야당 행안위원들은 대통령 관저 불법 증축 의혹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21그램 김태영, 이승만 대표가 국감에 불출석하자 동행명령장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갔지만, 동행명령에 실패했다. 뉴스1

“반드시 지구 끝까지 쫓아가 증인으로 세워서 진실을 밝히겠다.”

국정감사 첫날인 10월 7일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기본소득당 등 야당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 10여 명이 국회 국감장이 아닌 서울 성동구 서울숲 인근의 한 사무실 앞에 모였습니다. 이들이 앞서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던 ‘21그램’ 대표 두 명이 불출석 사유서도 제출하지 않고 국감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21그램은 김건희 여사가 운영했던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의 후원업체로, 대통령 관저 공사를 경쟁 없이 수의 계약으로 따내 특혜란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날 국감이 시작하자마자 이들에 대한 동행명령장 발부부터 의결한 야당 의원들은 동행명령장을 직접 들고 현장으로 찾아갔습니다. 국회에서 출발하는 시간과 도착하는 장소도 기자들에게 미리 알린 덕에 국감 첫날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성공했죠. 다음날 주요 일간지 1면에 민주당 행안위 간사인 윤건영 의원이 문을 두드리는 사진이 줄줄이 실렸으니 말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출입 기자들에게 공지한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동행명령장 집행 동행 관련 공지

카메라 앞에서 연신 사무실 초인종을 누르고, 손으로 문도 두드려 보던 이들은 “아예 인기척이 없다”(윤 의원), “대통령 관저를 담당했던 회사가 없어지면 국가 보안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모경종 의원)며 잔뜩 성만 내고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 2주 간 이어진 22대 국회의 첫 국감에선 상임위마다 비슷한 장면이 되풀이되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192석 거야(巨野) 주도로 발부된 동행명령장만 16건입니다.

동행명령은 국회증언감정법(증감법)상 ‘증인이 국감 등에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은 경우 의결로 해당 증인에 대해 지정한 장소까지 동행할 것을 명령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조치입니다.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의도적으로 수령을 피하면 국회를 모욕한 죄로 고발 대상이 되고,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강제 구인 효력은 없습니다. 21그램 대표들처럼 숨어버리면 강제로 찾을 방법은 없습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동행명령제가 1988년 도입된 이래 지난해까지 총 94건의 동행명령장이 발부됐습니다. 매년 평균 2.6건인 셈입니다. 여야 간 대결이 만만치 않았던 21대 국회 때도 4년을 통틀어 9건이 의결됐던 점을 고려하면 22대 국회 첫 국감이 유독 요란한 건 확실해 보입니다.

21일 오전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김건희-최은순 모녀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영부인에게 망신주기 하려는 의도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전례가 없다”며 반발했지만, 수적 우위에 있는 야당이 재석의원 17인 중 찬성 11인, 반대 6인으로 가결시켰습니다. 민주당 소속인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민주당 의원 몇 명이 동행명령장을 전달하는데 동행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자유롭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김건희 여사와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씨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며 상세 내용을 화면에 띄우고 있다. 뉴스1

이에 앞서 15일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이상인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한 동행명령장을 발부했고,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김 여사의 KTV 무관중 국악 공연 ‘황제 관람’ 의혹과 관련해 KTV 방송기획관 출신 최재혁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과 실무 PD에 대해 동행명령을 의결했습니다.

행안위는 10일에도 김 여사의 22대 총선 공천 개입 의혹 핵심 관계자인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과 명태균 씨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습니다. 이밖에 교육위원회는 김 여사 논문 표절 의혹 관련 증인인 설민신 한경국립대 교수를, 법사위는 장시호 씨 위증교사 사건 증인 김영철 검사를, 과방위는 울산방송 불법 소유 의혹 증인 우오현 SM그룹 회장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관련 증인 임무영 변호사에 대해 각각 동행명령장을 발부했습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입법사무관이 동행명령장을 전달하기 위해 10일 오후 김건희 여사 공천개입 의혹 핵심 관계자인 명태균 씨의 경남 창원시 성산구 자택을 찾아 명 씨 가족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동행명령은 필요한 경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집행돼야 하는 제도입니다. 다만 이번 국감 들어 요란하게 발부된 동행명령이 실제 집행된 사례는 없었습니다. 국회 직원들은 최 비서관이 입원 중이라는 병원으로 동행명령장을 들고 찾아갔지만, 병실 호수를 확인하지 못해 동행명령에 실패했습니다. 명 씨와 김 전 의원에 대한 동행명령장도 국회 직원들이 경남 창원까지 내려갔건만 이들이 자택에 부재중이어서 결국 전달하지 못했고요. 솔직히 당연한 결과 같습니다. 국감장에도 불출석한 증인들이 얌전하게 대기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정작 명 씨는 지금까지도 언론과는 자유자재로 접촉하고 있죠. 국회 동행명령 제도를 우습게 만든 나쁜 선례로 남을 듯합니다. 애초에 야당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물증을 손에 쥐고 있었더라면 이토록 증인 동행명령을 남발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명태균 씨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 국회 행안위 제공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왼쪽 두 번째)가 8일 국회에서 열린 당 국감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들 뒤로 걸린 백드롭에 ‘2024 끝장 국감 김건희를 특검하라’고 적혀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아무런 힘도 없는 동행명령장만 뿌리는 국감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번 국감을 윤석열 정권을 향한 ‘끝장 국감’으로 만들겠다”던 민주당의 선언도 무색하게 느껴집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감 하루 전인 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국감은 윤석열 정권 2년 6개월의 폭주를 끝장내고,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자유와 평화가 살아 숨 쉬는 희망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새 역사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이같이 자신했었죠.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도 당시 “국감 기간 제보들이 이어질 것이고, 새로 드러나는 진실을 토대로 점점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 목소리도 거세질 것”이라고 했었는데, 2주가 지난 지금까지 국감장 밖의 명태균 입만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중지된 뒤 여당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야당 의원들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위원장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역사관 문제와 관련해 퇴장을 요구하며 정회하자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 등이 항의하고 있다. 뉴스1

국감도 이제 어느덧 후반부에 접어드는데요, 민주당은 “남은 국감도 끝장 국감”을 외치고 있습니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20일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는 국정감사가 반환점을 돌았다. 이번 국감을 통해 밝혀진 김 여사 관련 의혹만 서른 건이 넘는다”며 “국감으로 미진한 부분은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통해 끝까지 밝혀내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맹탕 국감’에 대한 민주당의 출구전략은 또 다른 청문회와 국정조사란 얘기입니다. 이 끝없는 도돌이표를 계속 반복하겠다는 거죠. 청문회와 국정조사에도 핵심 증인들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래서 특검도 또 하겠답니다. 민주당은 국감 도중인 17일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했습니다. 애초 국감이 모두 끝난 뒤 새롭게 드러난 의혹을 포함해 11월 경 발의하겠다고 했었는데, 예정보다 앞당겨 발의한 겁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국감이 잘 되면 국감이 끝난 뒤 하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이 미지근하니 이슈 파이팅 차원에서 발의 시점을 좀 앞당긴 것”이라고 설명하더군요. 특검은 대통령이 거부할 텐데 어떡하냐고요? 그래서 조국혁신당은 이달 26일, 민주당은 11월 2일부터 여론전을 위한 대규모 장외집회를 시작한다 합니다.

결국 국감도, 청문회도, 본회의도 ‘닥터 스트레인지’ 속 ‘도르마무’ 마냥 무한 루프에 갇힌 형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끝없는 도돌이표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더 이상 의혹 제기만 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 수권 정당으로서의 역량을 입증해야 할 때입니다. 안 나오는 증인 탓, 방해하는 여당 탓만 하다가는 다음 청문회와 국정조사도 결국 ‘망신주기용’ ‘정쟁용’이라는 도돌이표에 갇힐 겁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