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월계관의 진정한 주인은 월계관 쓴 황제, 권력-생명 필멸 죽음을 이겨낸 예수의 기독교… ‘신의 죽음’ 선언한 철학이 부정 승자는 역사의 종언 꿈꾸지만… 모든 제국은 끝나고 역사는 계속
월계관을 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모습을 양각한 장신구.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그러나 그 승리는 얼마 가지 않는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 그 역시 필멸자였던 것이다. 그의 성취조차 의심스럽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리던 바로 그때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처형되었다. 그는 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정복민과 피정복민의 조화에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뒤를 이은 칼리굴라 황제는 검투사 경기를 재개했고, 국고를 탕진했고, 성적 방종을 일삼다가 통치한 지 4년도 못 되어 근위대장에게 살해당했으니, 티베리우스 황제는 권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에 실패한 정치가였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의 성취도 그의 목숨만큼이나 오래가지 못했으니, 그의 월계관도 쓸쓸해 보일 수밖에. 그래서 묻게 된다. 월계관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16∼17세기경 플랑드르 지방에서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해골 그림. 승리한 것은 죽음 그 자체라는 듯 해골에 월계관이 드리워져 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17세기 화가 루벤스의 작품 ‘죄와 죽음에 승리한 예수’.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듯 발밑에 해골과 뱀이 깔려 있다. 사진 출처 뮤추얼아트 홈페이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처형되지만,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는 이 처형의 순간은 곧이어 도래할 승리의 순간을 예비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부활은 신뿐 아니라 그 신을 믿는 인간들에게도 왔다. 오랫동안 박해받던 그리스도교는 마침내 로마 황제의 공인을 받았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기성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신교가 생겨나고, 급기야는 그리스도교 도덕 자체를 비판하고 신의 죽음을 선언하는 철학자마저 등장한다. 그가 보기에 약자의 궁극적 승리를 선양하는 그리스도교 도덕은 강자의 탁월함을 인정하는 로마적 도덕을 부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부정은 다시 부정될 때가 왔다. 이제 신이 진정 죽을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한 철학자도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승리자인가. 로마 황제인가, 그리스도교인가, 니체의 철학인가. 승리자는 대개 역사의 종언을 꿈꾸는 법. 자신과 더불어 혼란과 변화는 끝나고 영원한 평화가 깃들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의 제국만큼은 그냥 사그라질 잔물결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이 무력으로 건설한 정치적 제국이든, 믿음으로 건설한 신앙의 제국이든, 철학으로 건설한 사상의 제국이든. 그러나 승리를 선언한 순간부터 조직은 타락하기 시작하고 믿음은 부패하기 시작하며 사상은 왜곡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사는 그들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리하여 한때의 승리자들은 역사를 초월하는 대신 역사 “속에” 자리매김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승리자는 역사인가? 그 역사는 누가 쓰는가? 승자가 역사를 쓴다고? 승자가 역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쓰는 이가 승자다. 그러나 자기가 쓴 정사(正史)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 역사서술 역시 도전받기 시작한다. 역사는 거듭 새로이 쓰이기 마련. 이제 서로 경쟁하는 역사들끼리 전쟁이 벌어진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