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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진우]‘포탄밥’ 우려 속 파병한 北… 푸틴 뒷배 믿고 도발 노림수

입력 | 2024-10-20 23:15:00

신진우 정치부 차장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를 돕겠다며 최정예 특수부대를 파병했다. 총알받이가 될지 모를 ‘병력’을 당장 하루 수천 명씩 죽어 나가는 전장에 보내는 건 백두혈통 독재자에게도 큰 부담이다. 파병에 따른 국제사회의 손가락질도 그렇지만 맥시멈으로 가해질 대북제재 수위는 가뜩이나 궁핍한 북한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자칭 세계 최강이라 선전해 온 특수부대가 막상 실전에선 ‘포탄밥’이 돼 체면을 구길지 모르고, 탈영 가능성 등 각종 골치 아픈 변수도 많다. 정부 소식통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진작 파병을 원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이제야 본격 파병이 이뤄진다는 건 김정은으로서도 선뜻 마음먹기 힘든 결정이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결국 파병을 택했다. 그것도 후방 지원 병력이 아닌, 1만2000여 명에 달하는 최정예 특수부대를 투입한다. 파병으로 얻을 반대급부가 부담으로 환산될 각종 리스크를 훌쩍 뛰어넘을 수준으로 매력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다.

북한은 파병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약속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군은 전장에서 보너스를 챙기고,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북-러가 올해 새로 맺은 조약에는 이미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 시 상호 군사 원조 등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병력을 실제 보낸다는 건 다른 차원의 의미다. 혹시 모를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로부터 병력이나 첨단 무기를 지원받을 든든한 보험을 이번 화끈한 파병을 통해 들어놨다고 김정은은 믿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정보 소식통은 “왜 ‘지금’ 대규모 파병 결정을 내렸는지 봐야 김정은의 진정한 노림수가 보인다”고 했다. 신냉전 구름이 급격히 몰려오는 최근 국제 정세나 코앞에 다가온 다음 달 5일 미 대선 시점 등까지 염두에 둬야 김정은의 진정한 노림수가 보인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미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옥토버 서프라이즈’, 즉 10월의 깜짝 도발에 나설 것으로 우리 당국은 보고 있다. 미 정권 교체기 전후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정상각도’ 발사나 7차 핵실험 버튼을 누를 거란 관측까지 나온다.

이런 대담한 도발에 나서려면 우선 믿고 지켜줄 뒷배가 절실하다. 김정은은 포탄 등 무기 제공 수준을 넘어 ‘병력’까지 전장에 보내주면 중대 도발에 나서도 푸틴이 어떻게든 병풍처럼 자신의 편에 서줄 거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푸틴의 뒷배가 든든해질수록 테이블 위에 올려진 도발 옵션 중 더 위험한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혈맹(血盟)인 중국과 최근 관계가 소원해진 김정은으로선 북-러 관계라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단단하게 굳혀야 한다. 신냉전 속 북-러 관계를 콘크리트처럼 굳힐 유일한 옵션은 파병이다. 국가 간 관계가 물보다 진한 피로 묶이면 어느 한쪽도 무시하기 힘들다는 건 역사가 증명해 왔다. 김정은은 전장에서 흘린 피가 첨단무기 지원으로 돌아올 거란 기대감도 가진 듯하다. 청년들을 전장에 내몬 반대급부로 핵잠수함 건조 등 숙원사업을 해결할 ‘기술 설명서’를 손에 쥘 거라고 기대하고 있을 거란 의미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