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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 진실, 심오한 진실[내가 만난 명문장/박혜진]

입력 | 2024-10-20 22:51:00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진실이 있다. 하나는 통속적인 진실로, 이것의 반대는 불합리이다. 다른 하나는 심오한 진실인데, 그 반대 또한 심오한 진실이다.”

―닐스 모어




박혜진 문학평론가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모어의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을 헨닝 망켈의 소설 ‘이탈리아 구두’ 첫 페이지에서 만났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오래전 의료사고에 연루돼 일찌감치 인생의 막을 내린 남자가 있다. 남자는 속세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어느 무인도에 홀로 틀어박혀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낸다. 아침마다 꽁꽁 언 강을 깨고 들어가 수영하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가 가질 수 있는 건 통증밖에 없다.

거두절미, 남자의 몰락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고통은 그가 치러야 할 대가다. 그렇다 해도, 그가 받는 벌의 무게는 그가 지은 죄의 무게에 합당할까? 통속적 진실의 눈으로 볼 때 우리는 남자의 잘잘못을 가리는 심판자가 된다. 심오한 진실의 눈으로 보면 조금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다. 고통 속에서 남자는 비로소 자신이 상실한 것을 되찾을 기회를 얻는다. 일찍이 헤어졌던 아내며 딸을 만나는 것도 그가 ‘고통받는 인간’이 된 후의 일이다. 통속적 진실의 세계에는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구분되지만 심오한 진실의 세계에서 그런 구분은 힘을 잃는다.

노벨 문학상 발표를 매년 업데이트되는 ‘문학에 대한 정의’라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 한강의 이름이 호명됐을 때, 그의 소설에서 만났던 고통받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문학이란 인간의 가장 어둡고 연약한 통점을 찾아내 한층 더 심오한 진실에 다가가려는 집념의 결정체다.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통속적인 진실 안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며 살아가지만, 그런 와중에도 진실의 모양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로 심판자처럼 굴되, 때로는 소설가처럼 의미에 천착해야 한다. 과학과 문학이 공동으로 인증하는 심오한 정의다.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