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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식 군복 치수 적으세요”… 러, 파병 온 북한군에 한글 설문지

입력 | 2024-10-21 03:00:00

[北, 러시아 파병]
보급품 지급 등 러 파병 정황 속속 포착
여름 군복도 지급, 장기전 대비한 듯… 우크라 영상 “저거 가져가거라” 음성
러 수송함 이동, 한국 위성에 찍혀… “실전 경험無” “훈련 잘돼” 평가 갈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는 러시아가 북한군을 상대로 군복 치수, 모자 크기 등을 물어보기 위해 한글로 작성한 설문지를 공개했다. 사진 출처 SPRAVDI 페이스북


‘모자 크기(둘레), 체복·군복 치수와 구두 문서를 작성해 주세요.’

20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공개한 설문지는 이런 한국어 안내로 시작한다. 같은 문장이 러시아어로도 병기돼 있다. 미국 CNN에 따르면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된 북한 군인들은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이 설문지를 작성해야 했다.

국가정보원이 18일 북한이 최정예 특수부대인 ‘폭풍군단’ 소속 군인 1500명을 이미 러시아에 파병한 사실을 공식 발표한 가운데 북한군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한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같은 날 러시아군 훈련장에서 북한군을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도 공개됐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확실시되면서 우크라이나 정세가 더욱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북한군, 몽골계 러시아인으로 위장”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러시아로 파병되어 군복과 군화 등 장비를 지급받고 있는 북한 군의 모습이라며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영상. 출처 우크라이나군 전략소통 정보보안센터(SPRAVDI) 페이스북

이번에 공개된 한글 설문지에는 ‘여름용 모자’와 ‘여름용 군복’에 대한 질문이 적혀 있다. ‘여름용 군복 치수’란 제목 아래엔 ‘러시아씩 군복의 치수’ 항목에 2에서 6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다. 그 옆에 각 치수에 맞는 신장 범위가 ‘158-162(cm)’에서 ‘186-192’까지 안내돼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옷 치수 기준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씩 크기’라고 적힌 항목은 빈칸으로 남겨져 있다. 북한군이 자신의 신장이나 북한식 군복 치수를 공란에 표시해 제출하면 이에 맞춰 러시아 군복이 지급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 파병 현장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도 공개됐다. 우크라이나의 키이우포스트에 따르면 18일 오후 한국어가 들리는 영상 2개가 유포됐다. 텔레그램의 친러시아군 계정인 ‘파라팍스(ParaPax)’ 로고가 박힌 한 영상에는 무장한 군인 여러 명이 흙길 위를 달리고 있다. 키이우포스트는 어깨에 휘장을 단 군복을 입은 러시아 군인이 앞서 행진하는 군대를 언급하며 “외국의 지원군”이라고 부르고 “수백만 명이 군을 지원하기 위해 올 것”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설명했다. 북한 억양의 “야” “같이 가”로 외치는 듯한 음성도 들린다.

SPRAVDI는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보급품을 받고 있는 장면도 공개했다. 사진 출처 SPRAVDI 페이스북

SPRAVDI 로고가 찍힌 또 다른 영상에선 러시아 군복을 입은 아시아계 군인들이 장비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국어로 “물”이라는 말과 북한 억양으로 “저거 가져가거라”라는 음성도 포착됐다.

SPRAVDI 측은 이 영상이 러시아 연해주의 세르게옙카라는 마을에 있는 훈련장에서 촬영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북한군엔 러시아 군복과 무기 외에도 시베리아 야쿠티야·부랴트 지역 주민의 위조 신분증을 발급해 신분을 은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지역은 한국, 일본, 중국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몽골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

北 특수부대 수송하는 러 함정 12일 북한 청진항에서 러시아 함정이 북한 병력을 이송하는 모습이 담긴 위성사진. 국가정보원은 북한 파병의 증거로, 기상조건과 관계없이 주야간 촬영이 가능한 고해상도 영상레이더(SAR) 위성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을 18일 공개했다. 국가정보원 제공

러시아 함정이 북한 특수부대원을 수송하는 움직임은 우리 인공위성이 포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해상도 영상레이더(SAR)로 이달 12일 북한 청진항에서 러시아 함정이 북한 병력을 이송하는 모습을 포착한 것. SAR은 전자파를 지상 목표물에 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신호 데이터를 합성해 영상을 만드는 방식으로 기상 조건과 관계없이 주야간 촬영이 가능하다.

● 북한군 역량은 아직 안 드러나

북한군 역량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미 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 출신 척 파러는 18일 키이우포스트에 “우크라이나군은 10년 이상 전투 경험이 있고, 나토 최정예 부대에 훈련을 받았지만 북한은 한국전쟁 휴전 뒤 대규모 실제 작전을 벌인 적이 없다”며 북한군의 역량을 낮게 평가했다. 반면 군사전문가 세르게이 리포보이는 17일 러시아 매체 뉴스닷루에 “막대한 돈을 들여 사상적, 육체적으로 훈련된 북한군은 어떤 명령이든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파병 정황이 드러나면서 미국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9일 주요 7개국(G7) 국방장관 회의가 열린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북한군 파병에 대해 “사실이라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나토 신규 회원국 가입의 첫 단계인 ‘가입 초청’이 우크라이나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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