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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탈북민 인재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법

입력 | 2024-10-21 23:09:00

탈북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최근까지 북한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기자회견을 통한 증언은 매우 중요해졌다. 사진은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가 2016년 12월 첫 기자회견을 가진 뒤 만세를 외치는 모습. 동아일보DB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해외 북한 정보기술(IT) 전사들의 ‘외화벌이 투쟁’은 참으로 처절하다.

올해 5월 미국 국무부는 북한 IT 노동자들이 300여 개 미국 회사에 위장 취업해 680만 달러(약 92억 원) 이상을 벌었다며 이런 사례를 신고하면 최대 500만 달러(약 67억 원)의 현상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북한 인력이 미국 회사에 취직하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반적인 방법은 우선 중국인으로 신분을 위조한 뒤 다시 명의를 빌려주고, 돈을 받을 미국인이나 유럽인을 찾아야 한다. 입금 받을 계좌도 함께 빌려야 하는데, ‘먹튀’ 당할 가능성을 감내해야 한다. 미국 감시망에 걸려 계좌 자체가 압류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를 모두 이겨내고 위장 신분 여러 개를 얻어 2중, 3중으로 취업에 성공했을 때 비로소 자기 몫을 해내는 외화벌이 전사로 북한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IT 활동을 했던 한 탈북민은 “전체 작업시간에서 적으면 40%, 많으면 80%를 위장 신분 취득에 쓴다”고 증언했다. 가뜩이나 헐값으로 일감을 수주해 신분 위조 협조자에게 떼어주고, 가끔 계정이 ‘폭파’돼 잃고 하다 보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다. 그래도 이들에겐 방법이 없다. 이렇게 몇 년을 일하다 보면 이들은 온라인 신분 세탁 전문가가 된다.

신분 세탁까지 하다 보면 북한 IT 전사들의 작업시간은 세계 최장이다. 중국의 비좁은 아파트에 여러 명이 팀을 이뤄 모여 살며 외출도 거의 못 한다. 사실상 감옥 생활을 하며 주말이나 한밤중에도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응대한다.

중국 내 북한 IT 인력 규모는 약 2000명, 북한 내부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작업하는 인원은 약 10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월평균 3000달러씩 상납한다고 가정하면 1년에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사상 최강의 대북 제재하에서 돈줄이 마른 김정은에게 이들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들이다.

김정은의 불법 외화 획득을 막으려면 이런 활동을 막아야 한다. 북한 IT 전사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네트워크에서 일을 해봤던 경험자들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북한의 불법 IT 활동에 대응하겠다고 말로만 요란할 뿐, 정작 탈북해 온 몇 안 되는 전직 북한 IT 인력은 활용하지 않고 있다.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던 전직 북한 IT 간부도 현재 한국에서 중소기업 보안팀에서 일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정은의 외화벌이나 자금 세탁에 종사하던 사람들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다. 전직 39호실 고위 간부가 서울에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우대하는 탈북민은 주로 외교관이다. 이들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취직해 월급을 받으며 북한 분석 보고서를 작성한다. 물론 외교관은 소중한 자원이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의 사례에서 보듯이 보고서로 북한을 바꿀 수는 없다.

김정은이 가장 아파할 해외 불법 자금 네트워크에 타격을 주려면 이 분야에 종사했던 탈북민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탈북민 인재 활용에 있어선 전임 정부와 별다를 바가 없다.

남북 관계 단절로 통일부가 예산을 쓸 곳도 확 줄었는데, 산하에 탈북한 인재들을 활용한 연구소를 만들면 어떨까. 불법 IT 감시팀, 불법 자금 감시팀 등이 운영되면 김정은 정권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공세적 대북 전략에 해당한다.

탈북민 활용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기자회견’의 부활이다. 과거 탈북한 사람들이 귀순용사로 불리던 시절에는 기자회견이 많았다. 그러나 탈북민 입국자가 연간 수백 명이 넘자 기자회견은 조용히 사라졌다.

국경 봉쇄가 삼엄해지면서 북한에서 곧바로 탈북해 온 사람의 수는 귀순용사 시절로 회귀했다. 그래서 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제대로 알기 어렵게 됐다. 북한에서 얼마 전까지 살다 온 사람의 증언은 국민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물론 원치 않는데 회견을 강요할 순 없다. 그러나 조사단계에서 원하는 사람은 회견을 할 수 있게 옵션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탈북민 정착 지원은 정권마다 되풀이된 레퍼토리다. 북한의 대남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 윤석열 정부는 정착을 넘어 탈북민의 공세적 활용을 진지하게 고민하길 바란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효과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증명돼 왔다.



주성하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