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환자 절반이 경증-준응급 대형병원 수요 몰려 처치 늦어져 권역-지역별 응급의료센터 지정 비교적 빠르게 치료 받을 수 있어
세란병원
하지만 이런 두려움의 배후에는 응급 상황에서는 무조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9월 현재 국내 응급의료기관은 총 411곳. 이 중 상급종합병원은 10곳 중 1곳인 41곳에 불과하다. 응급 상황에서 환자들이 모두 이곳으로 몰리다 보니 병원도, 환자도, 구급대도 모두가 힘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 대다수가 준응급 혹은 비응급 환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중앙의료원 국정감사 중 준·비응급 환자의 응급실 내원 비중이 2020년 이후 지속해서 절반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형 응급 환자는 총 1∼5등급으로 나뉜다. 1등급일수록 위독한 상황이고 3단계까지는 응급 단계로 나뉜다. 4단계는 준응급으로 두 시간 안에 치료하거나 재평가하면 되는 상태고 5단계는 비응급으로 급성기지만 긴급하지 않고 만성적인 문제의 일부분일 수도 있는 상태를 말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주영 의원실(개혁신당)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 내원 환자 중 준·비응급 환자가 2020년 55%, 2021년 53%, 2022년 53.4%, 2023년 51.8%(잠정치)로 4년 내내 절반을 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부터 2024년 7월까지 어떤 증상으로 응급실을 가장 많이 내원했는지 확인했더니 감염성·상세불명 기원의 기타 위장염·대장염이 78만7819건으로 가장 많았다. 복부와 골반 통증이 73만6170건으로 뒤를 이었다.이 밖에도 열, 두통, 감기 등이 포함됐다. 이 의원은 “일반 국민은 중증도를 직접 판단하기 어렵고 응급의료기관 종별 이용에 제한이 없어 응급실을 이용하는 경증 환자 이용 비율이 해마다 높다”고 말했다.
단순 고열, 설사 등으로 응급실을 찾으면 예상과 달리 팔에 수액을 꽂은 채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 응급실에선 응급 환자부터 진찰하기 때문이다. 열을 내리거나 탈수 방지를 위해 수액을 놓는 정도의 응급처치를 한 후 일반 진찰은 뒤로 미룬다. 응급한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새벽에 고열, 구토, 복통 등 참기 힘든 고통과 증상이 반복된다면 대형 병원 응급실이 아닌 지역응급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 동네 병원 응급실은 상대적으로 경증 환자가 많고, 중증 환자는 바로 대형 병원 응급실로 보내므로 빠르게 처치를 받을 수 있다.
치료비도 동네 병원 응급실이 훨씬 저렴하다. 경증이거나 비응급 환자가 대형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으면 의료비의 9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9월 13일부터 본인부담금 수준이 기존 50∼60%에서 90%로 올랐다. 대형 병원을 찾은 응급 환자가 평균 13만 원을 부담했었는데 이젠 22만 원을 부담하게 된 것. 중소 병원 응급실 본인 부담금은 늘어나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중소 병원 응급실은 보건복지부의 ‘응급의료정보제공 e-zen’ 홈페이지를 이용해 확인할 수 있다. 응급실에 남아 있는 병상 수, 수술 가능 여부 등도 확인 가능하다. 119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의료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한 후 증상과 위치를 말하면 적합한 응급실을 안내한다. 보건복지콜센터 129, 전국 시도 콜센터 120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응급의료시설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국내 응급의료시설은 크게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 등 3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가장 상위 개념의 응급의료시설은 해당 지역의 최종 치료기관이 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다. 예를 들어 서울대병원이 서울서북 권역, 전남대병원이 광주 권역의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되는 식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상급종합병원이나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 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다.
이보다 하위 개념으로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있다.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시도지사가 종합병원 가운데 지정한다. 여기엔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전국에서 환자가 몰리는 상급종합병원도 있고 각 지역의 중추 종합병원도 포함돼 있다.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전국 응급실의 ‘실핏줄’ 역할을 담당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각 지역에 흩어져 있어 실제 응급 상황에 누구나 찾을 수 있다. 지역응급의료기관 역시 인공호흡기 등의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환자가 몰리는 응급의료센터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빨리 검사 후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헬스동아는 서울 서북지역(종로, 중, 용산, 은평, 마포, 서대문)을 시작으로 우리 동네에 있는 주요 응급의료기관을 소개한다. 상급종합병원에서 몇 시간 걸리는 응급 진단과 검사도 이곳에서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대학병원이 아니더라도 환자들이 믿고 방문할 수 있는 든든한 동네 응급병원을 이용하는 것도 ‘응급실 대란’을 막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응급환자 오자마자 즉시 검사… 야간에도 외과-비뇨기과 수술
〈1〉 세란병원 지역응급의료기관
김태성 세란병원 과장(의사)이 환자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17일 찾아간 세란병원 응급실은 침상 10개 규모다. 평일 낮 시간이었지만 환자 2명이 응급실 안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다. 취재 도중에도 119구조대가 환자를 계속 이송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하루 40∼50명, 주말에는 하루 60여 명이 세란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세란병원 응급실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른 검사다. 야간에도 병원 자체적으로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 혈액, X레이 등의 검사를 할 수 있다. 응급실은 24시간 운영되며 의사 1명이 상주한다. 이날 근무하던 김태성 세란병원 과장(의사)은 “통상 두부외상 환자 10명 중 9명은 단순 뇌진탕이고 1명 정도만 뇌출혈”이라며 “우리 병원에선 지체 없이 바로 검사해 환자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대학병원에 갔던 환자들도 몇 시간 동안 대기하다가 우리 병원으로 재이송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응급 검사 후 큰 문제가 없는 환자들은 귀가한 다음 외래 진료를 받게 한다. 그보다 상태가 중한 경우에는 입원시키며 뇌출혈 등 즉각 조치해야 하는 경우에는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등 인근 상급병원으로 이송한다. 경증 환자는 지역응급의료기관에서 직접 치료하고 중증 환자만 대학병원 등의 권역응급의료센터로 보낸다는 응급의료의 ‘대원칙’이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세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파업 이후 지역응급의료기관인 우리 병원 응급 환자 수가 1.8배가량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세란병원 응급실의 배후 진료과는 외과, 내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이다. 야간에도 외과와 비뇨기과 위주로 소화관 응급수술, 급성 담낭담관질환, 응급 간담췌질환, 신장 손상 수술, 방광 및 요도 손상 수술 등을 받을 수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