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中론바이 韓자회사 제소
증거보전 신청도… 법원, 받아들여
산업부 산하 무역委도 조사 나서
론바이측 “특허침해와 무관” 주장
LG화학이 중국 양극재 업체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기차용 배터리 분야에서 한중 기업 간 특허 소송전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국의 배터리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며 한국의 기술력을 노린 중국 기업들의 지식재산권(IP) 침해가 노골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2일 배터리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중국 론바이의 한국 자회사 ‘재세능원(載世能源)’을 상대로 특허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또 증거 확보를 위한 증거 보전 절차를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이달 2일 충북 충주시 대소원면 재세능원 공장에서 해당 절차를 시행했다.
LG화학은 재세능원이 자사 삼원계(NCM·리튬 코발트 망간) 양극재 기술을 베껴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극재는 전기차 배터리 원가의 5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양극재 시장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리튬인산철(LFP) 양극재는 중국이 우위에 있지만 긴 주행 거리 및 높은 출력으로 고부가가치를 갖는 삼원계 양극재는 한국이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LG화학은 세계 최초로 NCM 양극재 양산에 성공한 업계 선두 기업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1300여 건의 양극재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재세능원의 모회사 론바이는 중국 삼원계 양극재 1위 기업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배터리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한국에 재세능원을 설립하고 수출 전략기지로 운영하고 있다. 론바이는 지난해 8월 한국에 배터리 소재 공장 두 곳을 추가 건설하기 위해 약 5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한국을 북미, 유럽 등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론바이 측은 자신들의 양극재 소재 기술이 LG화학 특허 침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론바이의 자체 독자 기술이거나 LG화학의 기술과 연관을 갖는다고 해도 보호 가치가 있는 특허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론바이 측은 논란이 되는 특허가 무효라는 사실을 확인받기 위해 특허청에 무효심판과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청구하며 맞서고 있다.
하지만 LG화학은 소송에 앞서 론바이의 양극재 샘플을 분석해 다수의 특허 침해 사실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론바이가 용량, 출력이 향상된 고성능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뿐만 아니라 내열성이 강화된 안전 관련 기술 등 LG화학의 특허를 다수 침해하고 재세능원을 통해 생산, 판매한 것”이라고 했다. LG화학은 론바이 측의 특허 침해 사실을 인지한 후 원만한 해결을 위해 수차례 논의를 제안했지만 론바이가 응하지 않으며 소송에 이르게 됐다는 입장이다.
이 사건은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에서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LG화학이 론바이 측을 불공정 무역 행위 혐의로 무역위에 신고하며 1월 조사가 개시됐다. 지난달 말 양측 간 최후 의견서를 받아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무역위 관계자는 “혐의가 확인되면 국내에서 해당 제품의 수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며 “연내 결론을 내릴 방침”이라고 했다.
한국 배터리 업계는 미국의 배터리 규제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중국 업체들의 특허 침해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의 우수한 기술을 베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자신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광물·소재 공급망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특허는 기업들이 오랜 기간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쌓아 올린 강력한 지식재산”이라며 “정당한 권리 행사는 물론이고 다양한 IP 사업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