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 앞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왼쪽은 한 대표가 인적쇄신 대상으로 꼽았다는 이기정 의전 비서관. 2024.10.21 / 대통령실 제공
“우리 당 의원들이 헌정 유린하는 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할 경우 나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우리 당 의원들을 믿는다.”(윤석열 대통령)
21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의 81분 면담에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둘러싸고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를 수용해 ‘김건희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으면 김 여사 특검법 이탈표를 막을 명분이 없다는 한 대표의 지적을 윤 대통령이 압박으로 받아들이며 직접 ‘위헌적인 법안에 대해 여당 의원들이 찬성하진 않을 것’이라고 일축한 것이다. 한 대표의 특검법 거론에 윤 대통령이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향후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 과정에서 윤-한 갈등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대표는 이날 면담에서 “지금 민심이 좋지 않다. 당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며 “선제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김건희 특검법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표결 때 의원 30명을 설득하는 등 의원 여당 내 이탈표를 최대한 막기 위해 노력했으니 이제는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사항을 윤 대통령이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에 윤 대통령은 “특검과 검찰 수사라는 것은 객관적 혐의와 단서가 있어야 하는 건데 정치적 의혹만으로 믿고 싶다고 진행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이어 한 대표에게 “여당이 위헌적이고 헌정을 유린하는 법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면서도 여당 의원들이 돌아선다면 막을 방법이 없지만 의원들을 믿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2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특검법 이탈표 우려에 대해 아주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은 것”이라면서도 “의원들의 입장이 달라지면 어쩔 수 없다는 게 반드시 특검법을 수용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면담에서 ‘김건희 리스트’ 해법을 둘러싼 간극을 확인한 만큼 향후 특검법 재표결이 당정 관계의 뇌관으로 자리잡게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검법이 재발의될 때마다 강조해 온 여당의 단일대오에 균열이 생기면 공멸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적어도 다음달 1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선고 전까지는 당정이 화합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도록 매진해야 되고, 면담도 그런 차원에서 고려된 행사”라며 “적전분열만큼은 피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대표의 3대 요구사항 등을 윤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하면서 김건희 특검법을 둘러싼 당내 충돌도 본격화됐다. 친한(친한동훈)계에선 “대통령실이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러면 뭘 어떻게 하려는 건지 답답하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친윤(친윤석열)계는 “친한계가 당정 관계를 파괴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친한계 핵심 인사는 이날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김건희 특검법을 막을 명분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상황 인식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친한계인 김종혁 최고위원도 “대통령실의 인식은 상황을 너무 좀 안이하게 보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우려가 좀 있다”며 “여론이 나빠지면 홧김에라도 (일부 의원이) 이탈을 해서 혹시라도 민주당의 법안(김건희 특검법)이 통과될까 봐 상당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친한계 내부에선 “제3자 추천 김건희 특검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친윤계는 김 여사 특검법 저지를 위한 단일대오를 재차 강조하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 출신인 강명구 의원은 “지금은 단일대오로 야당의 입법 폭주를 막아야 한다”며 “파상공세 탄핵까지 얘기하는 마당에 우리가 똘똘 뭉쳐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의견을 경청한 만큼 한 대표도 대통령과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 조금 노력해 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