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텐버그 개인전 ‘노 노즈 노우즈’ 오늘 현대카드 스토리지서 개막 경제 세계화 이면, 유머로 꼬집어
미카 로텐버그의 영상 작품 ‘노 노즈 노우즈(NoNoseKnows)’(2015년)의 한 장면. 백인 여성은 재채기를 하며 음식을 만들고, 아시아 여성은 진흙 투성이 작업장에서 진주를 분리한다. 현대카드 제공
“뉴욕에서 내가 먹는 사탕을 아주 멀리서 살고 있는 누군가가 포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고도로 세계화된 경제 시스템에서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속에 놓인 사람의 몸, 노동의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조명한 미카 로텐버그의 개인전 ‘노 노즈 노우즈(No Nose Knows)’가 23일 서울 용산구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개막한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로텐버그가 20여 년간 작업해 온 대표 영상과 설치, 조각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의 출발은 로텐버그가 대학원생일 때 만든 초기 작품 ‘메리의 체리’다. 좁은 공간에서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작은 구멍으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체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은 유쾌하며 우스꽝스럽게 그린다.
영상이 전시된 장소 입구에는 플라스틱 바구니 속에 진주가 놓여 있는데, 이렇게 최종 결과물로 생산된 진주는 반짝이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장소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흙투성이의 맨바닥이다. 상품은 우아하지만 그렇지 못한 제작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작가는 세계의 수많은 자원을 한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현대사회 경제의 이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로텐버그의 작품만이 가진 강점은 영상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발랄한 색감과 재치가 가미된 스토리다. 21일 기자들을 만난 로텐버그는 “세상에 대해 비평할 수 있지만 너무 진지하게 힘을 줘서 명령하듯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유머는 작가로서 나름의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전시장에는 긴 손톱이 달린 채 벽면에서 회전하는 조각 작품 ‘손가락’이나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영상을 연상케 하는 ‘스파게티 블록체인’ 같은 작품도 볼 수 있다. 작가는 대규모 상품 유통 과정을 역설적으로 묘사한 ‘코스믹 제너레이터’를 꼭 봐야 할 대표 작품으로 꼽았다.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