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첫 산문집 ‘어떤 비밀’ 출간 24개 절기별 쓴 편지에 산문 더해 2015년작 ‘구의 증명’ 역주행 인기 “사랑 하고픈 마음 때문 아닐까요”
제주 바다를 거닐고 있는 최진영. 그는 제주에서 카페를 하면서 손님들에게 쓴 편지에 산문을 덧붙여 신간 ‘어떤 비밀’(작은 사진)을 펴냈다. 신간에는 그의 대표작 ‘구의 증명’을 쓰던 시절을 회상한 내용이 담겼다. ⓒ김승범 난다 제공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사랑하는 연인 ‘구’를 기억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의 시신을 먹는 ‘담’의 이야기를 그린 최진영(43)의 장편소설 ‘구의 증명’(은행나무) 중 일부다. 그의 팬들에게 즐겨 회자되는 이 구절은 어떻게 나온 걸까.
작가 최진영은 22일 첫 산문집 ‘어떤 비밀’(난다)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집필 배경을 밝혔다. 그는 “‘구의 증명’을 쓸 때 지금의 남편과 막 연애를 시작할 때였다”면서 “원래 저는 사랑을 하면서 행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지런히 ‘담’을 따라가다 보니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마음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구의 증명’의 역주행 비결을 묻자 최진영은 “그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저는 모르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면 저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또 쓰고 싶지 않을까요? 나만큼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결국엔 사람들이 사랑을 원하는 게 아닐까. 지겹고, 뻔하고, 할 만큼 했다, 볼 만큼 봤다 싶지만 여전히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고 사랑을 하고 싶은 그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새 산문집은 24개 절기마다 편지를 쓰고, 각각의 편지에 산문을 더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제주에 산다. 제주 옹포리에서 아담한 카페를 운영하는 남편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절기마다 편지를 써 손님들에게 전한 게 시작. 이날 간담회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을 하루 앞두고 열렸다. 서리 대신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최진영은 편지를 상대를 지극히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편지는 오직 너에게만 전하는 나의 마음이고 내가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메일만 하더라도 ‘보낸 메일’에 남아 있지만, 편지는 밀봉해서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라며 “애틋하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소통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올 12월 제주 생활을 접고 가족과 함께 경기 파주시로 이사해 카페를 열 예정이다. 편지도 계속 쓸 생각. 그는 소설을 쓰다 보면 자신의 삶이 궁금해져 더 살아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10년 전 구와 담이 알려준 그 사랑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설이 근본적으로 저를 변화시킬 것이기에 앞으로의 소설 쓰기가 기대됩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