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퍼즐 하나씩 푸는 자폐… 행동-약물 등 치료로 뇌손상 최소화가 관건[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입력 | 2024-10-22 23:00:00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과 치료
아직도 정의-진단법 명확하지 않아… 발달장애-반복행동 등 증상 다양
자폐 환자 30% 정도는 뇌전증…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게 중요
악화 막으며 완치법 기다릴 필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왼쪽), 영화 ‘포레스트 검프’ 포스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시작 부분에 영우의 아버지는 영우에게 “아빠 좀 봐”를 계속 외치지만 영우는 아빠를 보지 않는다. 다섯 살까지 말을 하지 않았다고 의사에게 이야기하자 의사는 영우가 아마 자폐증일 것이라고 한다. 자폐증으로 유명한 또 다른 극 중 인물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 검프다. 두 이야기 모두 주인공이 자폐증으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아주 유능한 변호사, 그리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모습을 그린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자폐증은 공식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질환이라고 부른다. 자폐 스펙트럼 질환을 진단하는 기준은 미국 정신의학회가 발행하는 정신장애에 관한 분류 체계인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DSM)이 제시한다. 어떤 증상을 바탕으로 정신장애를 분류할지에 관한 기준을 최신 연구 결과 등을 바탕으로 갱신한다. 이러한 기준 체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폐는 정의나 진단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 아직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을 바탕으로 질환 자체를 정의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면 된다. 자폐 스펙트럼 질환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다양한 질환으로 생각되었던 것들이 공통적인 증상을 가지고 있으니 한데 묶어서 같은 계열의 질환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 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사회성, 언어, 행동 발달 장애가 있다. 구체적으로 눈 맞춤,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행동이나 감정 교류에 있어서 질적인 손상, 말을 잘 하지 않거나 그 의미를 적절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상동증, 정서적 불안감, 빛, 소리, 만지는 것에 대한 민감함과 같은 다양한 증상이 있다. 많은 증상 중 몇 가지 이상을 가진 경우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한다.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정도로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겉으로는 전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아스퍼거 증후군 같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을 수 있다. 교수나 전문 연구직과 같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사람 중에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그 증상에서 알 수 있듯이 본인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힘든 질환이다. 극 중 영우처럼 아이가 아버지의 애타는 부름에 전혀 응답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 것은 부모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다. 포레스트 검프가 벤치에 앉아서 초콜릿을 먹으면서 상대방의 관심이나 반응과 무관하게 내가 생각하는 내용을 여러 사람이 자리를 뜨는 동안 계속 이야기하는 장면도 자폐의 증상을 잘 보여준다.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경우 부모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함께 시간적,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이와의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 따른 어려움, 완치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절망감, 또 이를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극복하더라도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아이를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 등 보호자가 겪는 어려움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현재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완치할 방법이 없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치료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사용되는데 △행동, 언어, 교육 치료를 통해서 발달 장애를 완화하고 사회적 적응도를 높이는 치료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증, 정서 불안, 행동장애, 주의력 결핍, 수면 장애와 같은 동반 증상들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약물치료 △30% 정도의 자폐 환자에게 뇌전증이 있는데 이 경우 뇌전증을 치료하는 것이다. 뇌전증엔 상당히 많은 치료 방법이 있고, 뇌전증 발작 자체가 뇌를 지속적으로 손상시킬 수 있기에,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좋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도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발달장애인 만큼, 매일의 발달 과정이 다음 단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최대한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해도 완치될 수 없고 엄청난 시간과 경제적, 정신적 노력이 든다는 점에서, 그 수많은 노력이 무색하다는 느낌마저 들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해서 자폐 치료라는 큰 퍼즐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할 수 있는 치료를 최대한 활용해 뇌 손상과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하는 노력은 내일의 기술이 도래했을 때 완치 가능성을 최대한 높일 것이다.

자폐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두 주인공이 성공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부모의 깊은 사랑이다. 영우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 어머니의 사랑은 명대사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안에 들어 있는 초콜릿과 같다. 어떤 초콜릿을 먹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폐라는 예상치 못한 초콜릿을 집었더라도, 최선을 다해 뇌가 지속적으로 손상되는 것을 막고, 내일의 기술을 기다리면서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 내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