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사회부 기자
정부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전자관보’ 홈페이지엔 국가가 국민에게 알려야만 하는 다양한 정보가 있다. 법과 시행령의 변화는 물론이고 고위공직자의 재산 변동과 국유재산의 처분 내용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는 ‘압수물 환부공고’라는 것도 있다. 21일 한 지방 검찰청 지청장의 명의로 발행된 압수물 환부공고는 절도 사건에서 압수된 카드 한 장을 찾아가라는 내용이다. 관보를 살펴보면 그런 소액 물품 공고들이 적지 않다.
카드 한 장이 대수일까 싶지만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하면 안 된다는 건 헌법 정신이다. 그 때문에 카드 한 장의 행방조차 일일이 관보를 발행해 알리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부 경찰관들의 윤리 의식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종로경찰서 소속 모 경위는 자신의 계좌로 공금 1억 원가량을 여러 차례 이체했다가 대기발령됐다. 이달 서울 강남경찰서와 용산경찰서에서는 압수물인 현금을 빼돌린 경찰관들이 발각됐다. 두 사건의 횡령액은 수억 원에 달했다. 어떤 돈은 피해자의 주머니에서 나왔을 것이고, 또 다른 돈은 국민의 세금이었을 것이다.
경찰관이 압수물을 횡령하는 범죄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90년 서울에선 일선 파출소 순경이 220만 원을 횡령했다가 구속됐고, 2009년엔 경북에서 압수품인 석유를 빼다 2500만 원을 받고 판 경찰이 적발됐다. 제주에서는 약초술 4병을 빼돌린 경찰관이 2015년 검거됐다.
하지만 수억 원대의 압수품을 빼돌릴 정도로 간 큰 이들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일선 경찰관들이 이번 사건들을 보며 일부 동료의 직업의식에 황당함을 넘어 참담함을 느끼는 이유다. 한 경찰관은 “경찰이 민간인의 돈을 뜯어내고 마약 사건에 연루됐다는 필리핀 뉴스를 듣고 한심하다고 느꼈는데, 이번 사건들을 보니 우리 경찰의 수준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자조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앞으로 경찰에서 어떤 새로운 유형의 비위가 터질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급증한 경찰 인력에서 이런 사건의 근본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5년 9만2000명이던 경찰관의 수는 2011년 처음 1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엔 13만1700명으로 늘었다. 전투경찰(전경)과 의무경찰(의경) 제도 폐지 등에 따른 삭감 인력을 정규 경찰관으로 순차적 보충을 했기 때문이다. 2020년 52명이었던 비위로 퇴직한 경찰공무원은 지난해 65명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사람이 많아지면 그 속에서 일탈을 저지르는 이들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경찰 인력 증가 역시 예정된 대로 진행된 정책이고, 그 부작용으로 경찰관들의 비위, 비리, 범죄 사례가 늘어나리란 것도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경찰은 이에 대해 대책을 내놨던 적이 있는가.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