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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엠블럼 [청계천 옆 사진관]

입력 | 2024-10-23 13:24:00


북한이 경의선과 동해선까지 한국과 연결되는 도로를 끊고 있다. 남북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상징적인 의식으로 폭파 세리모니까지 하며 국제 사회의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 선거를 앞두고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러면서도 김정은은 북한 내부에서 꾸준히 인민들을 만나고 군사 시설과 군인들을 접촉하며 일련의 활동을 북한 내부 매체를 통해 북한 인민들에게도 알리고 있다. 23일에는 전략 미사일 기지를 시찰하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초음속 미사일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노출시켰다.

최근 김정은 사진에서는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몇 가지 장치를 활용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예전과는 다른 요소들이 등장함으로써 그가 ‘안전’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을 하게 한다.

첫째, 여기저기 국방위원장 엠블럼을 만들어 붙이고 있다. 김정은의 전용 승용차 뿐만 아니라 마이크 앞에도 붙이고 이제는 옷에도 붙이고 나타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 뿐만 아니라 김정은 집권 초기에는 없던 현상이다. 전 세계 지도자 중 자신의 집무실이 아닌 야외 현장에서 탁자와 마이크에 신분을 표시하는 엠블럼을 단 경우가 있는지 궁금하다.


어깨에는 계급장, 오른쪽 가슴에는 국방위원장 엠블럼이 붙어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야외용 탁자 뿐만 아니라 마이크에도 엠블럼을 붙이기 시작했다. 노동신문 뉴스1


둘째, 영상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옆에서 기록하는 ‘1호 사진가’의 카메라에는 일반 사진 뿐만 아니라 동영상을 동시에 촬영할 수 있는 미니 카메라가 추가로 장착되어 있어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흔히 유튜브 방송에서 활용되는, 스마트폰 촬영을 하는 실무자의 모습도 포착된다.


사진 오른쪽 인물이 휴대폰으로 김정은의 일정을 기록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세 번째 특징은 강화된 경호 체계이다. 경호팀의 강화다. 무장 경호원들이 방아쇠에 손을 넣고 있는 장면은 인간병기라고 할만한 특수부대원들의 훈련 참관 현장이라고 하더라도 평범한 모습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재밍 카도 등장해 행사장 주변에 대한 전파를 통제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김정은의 경호원들이 중무장한 채 군인들 옆에 서 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행사장 주변에 전파 차단을 목적으로 하는, 재밍 카가 등장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북한 내부의 잠재적 위협으로부터의 방어인지 국제 사회의 감시에 대한 두려움인지 알 수 없지만 행사장에 등장했다는 것은 과거와는 다른 징후로 볼 수 있다. 행사장에는 김정은의 전용차를 알아볼 수 없도록 엘블럼을 장착한 2대의 차량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왼쪽 위의 차량의 윗부분에 전파 차단용으로 보이는 장비가 설치되어 있고 오른쪽 아래 김정은이 군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넷째, 모자이크도 많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노동신문을 통해 나오는 신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북한에서 기념사진은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소원’처럼 김정은과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이 찍는 단체사진에는 한 장에 너무 많은 사람이 포함됨으로써 신문이나 액자 상태로 보더라도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행사 참가자들에게는 사진이 더 이상 중요한 증명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지만 북한 정권입장에서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외부 세계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으로 파견된 북한 미사일부대 기술자의 모습을 확인한,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는 AI 안면인식기술에 대한 두려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 옆에서 보고하는 사람의 얼굴이 마스크와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처리되어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자신을 과도하게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보안에 신경을 쓰는 장치들이 현재 북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작은 힌트가 아닐까.







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