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루언서 키스 리가 지난해 말 뉴욕에서 소셜미디어에 올린 음식 평가 영상. 사진 출처 키스 리 인스타그램
“김치가 이븐(even)하게 익었네.”
정양환 국제부 차장
올해 미 대선 경합주 중 하나인 미시간주 출신인 그는 스물일곱 살. 하지만 틱톡 팔로어만 18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레게 머리를 한 그가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면, 다음 날 식당은 수백 명씩 줄을 선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리가 호평한 음식점은 매출이 평균 900%나 늘어난다.
한데 그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평가 영상들은 낯설다 못해 황당하다. 일단 동네 어디나 있음 직한 소탈한 식당을 간다. 가볍게 인사 몇 마디 건네다가 주문한다. 근데 식당에선 먹질 않고 꼭 포장해 나온다. 그대로 차에 탄 뒤 음식을 꺼내 한 입 베어 문다. 그러곤 별 묘사도 없이 맘에 드네 마네 하다가 점수를 매긴다. “10점 만점에 몇 점.”
요식업계는 충격을 넘어 몸서리를 쳤다. 정당한 채점이 아니란 항변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음식 비평은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한 호텔 체인 관계자는 롤링스톤스에 “관련 분야에 종사했거나 학교를 나온 뒤 몇 년 이상 글을 실어야 ‘평론가(critic)’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웬 ‘듣보잡’이 생태계를 파괴하니 공분이 치솟았다.
리가 요리에 뿌리가 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가 감옥에 간 뒤 학교를 6번 옮겨 다닌 문제아였다. 고교 시절 레슬링에 입문해 마음을 잡고서 프로로 데뷔한 종합격투기 선수다. 그러다 ‘카메라 울렁증’을 이겨보겠다고 소셜미디어에 영상을 올린 게 인생을 뒤바꿨다. 팬데믹 시절 경기가 끊겨 배달 일을 했던 경험을 녹인 지금 방식의 음식 평가가 대박이 났다.
물론 리의 방식을 무조건 편들 순 없다. 음식 따라 먹는 법이 다르건만 자기 스타일만 고수하는 건 문제다. 요리의 일관성이나 서비스도 중요한데, 한 입 먹고 단정 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후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박하게 평가받은 몇몇 식당들은 경영에 곤란을 겪고 있다. 그도 이젠 왕관의 무게를 깨우쳐야 한다.
하지만 그가 다시금 일깨운 진리도 명확하다. 맛있는 건 어찌 먹어도 맛있다. 비싸고 화려한 음식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흑백요리사에도 나오지 않았던가.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우리는 누구나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일지언정 즐겁게 먹은 기억이 있다. 그건 정성 혹은 공감이 주는 힘이다. 맛이란 각자가 정하는 가치일테니. 행복은 내 혀 끝에 달렸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