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경력단절여성)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15년 남짓밖에 안 된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늘리겠다며 정부가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을 제정하면서다. 이때부터 경단녀는 임신, 출산, 육아 때문에 퇴직해 경제 활동을 중단한 여성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였다. 20대에는 남성보다 높았던 여성의 고용률이 애 낳고 키우는 30대에 푹 꺼졌다가 40, 50대에 다시 높아지는 ‘M커브’ 역시 경단녀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요즘 민간 기업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들까지 나서서 경단녀를 ‘경보녀’(경력보유여성)로 바꿔 부르고 있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여성 경력단절 예방’ 조례를 ‘여성 경력유지’ 조례로 개정한 지자체가 한둘이 아니다. 여성들을 위축시키는 ‘단절’이라는 부정적 용어 대신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살려 노동시장에 복귀하려는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자는 취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여성 임금근로자는 올 들어 처음 1000만 명을 넘어섰다. 60년 전과 비교하면 18배 가까이 급증한 숫자다. 여성 자영업자 비중도 30%를 웃돌며 최고치를 찍었다.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기업 문화가 확산되면서 여성의 경력단절이 줄어든 데다 창업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들이 늘어난 영향이다. 특히 이커머스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사업 아이템만 좋으면 큰돈 들이지 않고 인생 이모작에 도전할 길이 열렸다. 라이브방송의 ‘패션 셀러’ ‘뷰티 셀러’로 성공한 경보녀들이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남성과 여성의 임금 수준과 근로 조건 격차는 여전히 심각하다. 특히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난 비정규직 근로자의 3명 중 2명은 자발적으로 지금의 일자리를 택했다고 하는데 여기에 은퇴자와 경보녀, 청년 알바족이 몰려 있다.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시간만큼 일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생계를 위해 불안정한 일자리와 타협한 이들이 적잖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해 차별 없는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이게 리스타트에 나선 경보녀와 신중년, 청년들을 뒷받침하는 길이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