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정치부 차장
“이러다가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최근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간 갈등에 대해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정점을 찍으면 과거 반복돼 왔던 대통령의 탈당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21일 면담에서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요구한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건희 여사 대외 활동 중단,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 3대 요구 사항을 윤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노태우, 김영삼(YS),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은 모두 재임 도중 집권 여당을 떠났다. YS는 차남 현철 씨 비리가 터지고, 이회창 당시 대선 후보와 충돌하면서 1997년 대선 직전 탈당했다. DJ는 아들들의 비리 사건으로 논란이 커지자 사과와 함께 탈당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여당의 신당 추진 움직임과 탈당 요구에 맞춰 결국 당적을 정리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임기 말,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것과 다음 달 임기 반환점을 맞이하는 현 정부를 단순 비교하기엔 아직 이르다. 임기 중 대통령 아들들이 구속된 YS DJ 정부 때와 달리 윤석열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된 김 여사 문제는 아직 사법 처리 대상까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 정부 최저치(20%)를 찍은 대통령 지지율과 차기 주자인 한 대표의 차별화 전략 등을 감안하면 조기 탈당 요구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갤럽의 10월 셋째 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22%로 국민의힘 지지율(28%)보다 낮은 상태다.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 관련 의혹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일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국정 지지율이 폭락하는 사태를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21일 만났지만 접점은 찾지 못했고 ‘빈손 면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의 면담에서 명 씨 관련 의혹에 대해 “허무맹랑하다”고 선을 그었고 김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에 대해선 “더 자제하려고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3대 요구 사항을 들어준 것은 아니지만 윤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담백하게 밝힌 만큼 “이제 묵묵히 국정 운영을 해나가겠다”는 분위기다.
반면 한 대표는 11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 전 “김 여사 관련 국민 요구가 해소돼 있어야 한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거듭 밀어붙이겠다는 기류다.
당장 여당 내부에서 윤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다만 윤-한 갈등의 결말이 파국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선 양측이 타협 지점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여권의 집안싸움이 계속되는 것도, 대통령 탈당의 흑역사가 재연되는 것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