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문학 속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작가들의 든든한 조력자 1998년 국제 창작프로그램 참가 시작으로 라디오 DJ-웹진 편집위원 등 기회 제공 2014년 폴란드 파견 중 시-소설 ‘흰’ 구상 한강 “많은 이와 교류, 창작활동에 도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문학주간 2022’에 참여한 한강 작가. 작품 ‘흰’으로 개막 행사 낭독극을 기획, 낭독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문학 분야에서는 △우수 작품과 작가를 지원하는 ‘창작기금’ △‘해외 레지던시’ 등의 직접 지원뿐 아니라 △다양한 작품이 발표·유통되는 ‘문예지 발간 지원’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위한 ‘집필 공간’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온라인 문학 플랫폼인 ‘문학광장’ △매년 가을 작가들이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독자를 만나는 ‘문학주간’ △작가가 문학 시설에 상주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문학상주작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한강 작가의 경우 그가 문학의 길을 걷기 시작한 청년 작가 시절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20여 년간 다각적 지원을 이어왔다.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WP) 홈페이지에 1998년 한강 작가의 참여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터키의 오르한 파묵(2006년 노벨 문학상), 중국 모옌(2012년 노벨 문학상) 외에도 올해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알려졌던 찬쉐가 참여한 바 있다. 국내 작가로는 문정희(현 국립한국문학관장) 시인, 김사인 시인, 강영숙 소설가, 박찬순 소설가, 은희경 소설가가 대표적으로 예술위는 매년 공모를 통해 참여 작가를 선발해 지원하고 있다.
이후 한강 작가는 2000년 신진 문학가 지원과 2005년 ‘몽고반점’으로 예술창작 지원에 선정됐으며 예술위의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활동도 이어 갔다. 2005년부터 약 2년 동안 작가가 직접 만드는 라디오 방송인 ‘문장의 소리’ DJ로 활동했으며 2008년에는 3개월간 문학 전문 웹진인 ‘문장웹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예술위의 위 문학 플랫폼은 작가들이 직접 DJ, 구성작가, PD, 편집위원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전문성과 기획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들과 함께 소통하고 다양한 감각으로 문학을 향유할 수 있다.
한강 작가가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대 레지던시 파견 시 강의를 마치고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예술위 정병국 위원장은 “문화예술 지원은 즉각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예술가를 응원하고 뒤에서 묵묵히 돕는 일”이라며 “한강 작가가 글을 써온 지 30년 만에 노벨 문학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듯이 작가들이 지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위는 ‘포스트 한강’의 탄생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한국문학 생태계를 건강하게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앞으로도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도록’ 작가들이 작품을 쓰고 활동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을 이어 나갈 방침이다. 또한, 문학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원 기관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관심도 필수적이기에 일상 속에서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하고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수한 작가와 작품을 조명해 나갈 계획이다.
한강 장편소설 ‘흰’ 작가의 말 중에서
첫 달의 적응 기간이 지나자 서울에서 살던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걷는 것, 또 걷는 것- 돌아보면 바르샤바에서 내가 한 일은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틈이 날 때마다 아파트 주변의 고요한 천변을 산책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나가 골목들을 배회했다. 그보다 더 가까운 와지엔키 공원의 숲길을 목적 없이 걸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부터 쓰고 싶었던 『흰』이란 책에 대해, 그렇게 걸으며 생각했다. (중략) 기억한다. 아파트의 열쇠가 하나뿐이어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다섯시에서 다섯시 반까지는 어김없이 집으로 먼저 돌아와 있어야 했다. 그 시간까지 거리를 걸으며 이 책을 생각했다. 무엇인가 떠오르면 길에 선 채로 수첩에 몇 줄씩 적기도 했다. 하나뿐인 침실에서 아이가 곤히 잠든 밤이면 식탁 앞에 앉아, 혹은 거실의 소파침대에 담요를 쓰고 웅크려 앉아 한 줄씩 이어 적어갔다. (중략) 그렇게 그 도시에서 이 책의 1장과 2장을 쓰고, 서울로 돌아와 3장을 마저 썼다. 그다음 일 년 동안은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다듬었다.
첫 달의 적응 기간이 지나자 서울에서 살던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걷는 것, 또 걷는 것- 돌아보면 바르샤바에서 내가 한 일은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틈이 날 때마다 아파트 주변의 고요한 천변을 산책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나가 골목들을 배회했다. 그보다 더 가까운 와지엔키 공원의 숲길을 목적 없이 걸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부터 쓰고 싶었던 『흰』이란 책에 대해, 그렇게 걸으며 생각했다. (중략) 기억한다. 아파트의 열쇠가 하나뿐이어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다섯시에서 다섯시 반까지는 어김없이 집으로 먼저 돌아와 있어야 했다. 그 시간까지 거리를 걸으며 이 책을 생각했다. 무엇인가 떠오르면 길에 선 채로 수첩에 몇 줄씩 적기도 했다. 하나뿐인 침실에서 아이가 곤히 잠든 밤이면 식탁 앞에 앉아, 혹은 거실의 소파침대에 담요를 쓰고 웅크려 앉아 한 줄씩 이어 적어갔다. (중략) 그렇게 그 도시에서 이 책의 1장과 2장을 쓰고, 서울로 돌아와 3장을 마저 썼다. 그다음 일 년 동안은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다듬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