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문학 속으로] 해외 번역가들이 본 한강 문학
日 도쿄 서점에도 한강 물결 11일 일본 도쿄 기노쿠니야 서점에 마련된 한강 작가의 소설 특별 판매 코너. 이날 ‘채식주의자’ 등의 일본어 번역판은 거의 재고가 동났고, 영어 번역판만 소량이 남아 있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너무 놀랍고 기쁩니다. 한강은 충분히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작가입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한강 작품’ 번역가들은 이같이 밝혔다. 한강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해 온 번역가들이 말하는 한강과 한국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둠조차 아름답고 정교하게 담아내
영어 번역가 페이지 아니야 모리스 씨
내년 1월 미국에서 출간되는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번역가인 페이지 아니야 모리스 씨는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강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어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성균관대에서 비교문화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한강의 특징은 어두운 역사나 내면의 갈등을 다룰 때조차 아름다운 순간을 정교하게 담아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번역할 때도 한글로 된 원문을 읽었을 때 느낀 감정을 영어권 독자들도 최대한 비슷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데 가장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박경리, 장강명, 서장원 작가의 작품을 영어권에 소개한 모리스 씨는 “한강은 굉장히 꼼꼼한 예술가”라며 “늘 이메일로 소통해 오해를 피하고 의도한 바를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평했다.
현대사에 녹여낸 고통에 대한 탐구
프랑스어 번역가 피에르 비지우 씨
비지우 씨는 “스웨덴 한림원이 한 작가의 ‘독특한 자질’을 일찍 알아봐 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가 말한 ‘독특한 자질’은 내밀한 고통에 대한 탐구와 현대사를 결합한 것이다. 한 작가가 사람들의 진심을 잘 드러내는 용기를 가졌다고도 호평했다.
스페인어권서 韓 문학 관심 폭발적
스페인어 번역가 윤선미 교수
한국 문학 번역가인 윤선미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교수(59)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는 전 세계 5억 명으로 중국어 다음으로 많다. 윤 교수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스페인어권 언론으로부터 한국 문학과 작가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며 “한국 문학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교수는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일찍이 2012년 스페인어권(아르헨티나 출간)에 보급했다. 이듬해 한강이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서전’을 찾았을 때도 현지 독자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가부장제 특유의 보이지 않는 무형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해외 여성 독자들이 특히 열광했다”고 평가했다.
치열한 역사 가진 나라로서 더 와닿아
베트남어 번역가 황하이번 씨
한강의 소설집 ‘채식주의자’(2007년)를 베트남어로 번역한 황하이번 씨(46)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채식주의자는 2010년 베트남에서 출간되며 처음으로 해외 독자들과 만났다.
베트남은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외세와 맞서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문학을 발달시켜온 나라다. 황 씨는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교문화권이고 전쟁을 겪은 역사가 닮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것은 두 나라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황 씨는 “베트남 사회 전반에 ‘한강 열풍’이 불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직후 베트남 주요 언론은 한국 정부가 지난 30년간 관심을 가져온 한국 문학 세계화 전략을 집중 조명했다.
마음 깊은 곳 이야기 끄집어내는 힘
일본어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 씨
일본에서 ‘작별하지 않는다’ ‘흰’ ‘희랍어 시간’ 등 한강 작품 5편을 일본어로 번역한 일본 문학계의 유명 한국어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齋藤眞理子·64)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강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한강 작품을 읽으면 함께 고민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인정할 수 있죠. 한강의 작품에는 마음 깊은 속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사이토 씨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본 문학 팬들은 한국 작품을 훨씬 많이 읽고 있다”며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고 있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세계가 한강 작가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