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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국민 정신건강정책, 효과 높이려면 과감한 투자를

입력 | 2024-10-24 03:00:00

안용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안용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

최근 통계청은 지난해 국내에서 1만3978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발표했다. 자살자 수는 전년 대비 1072명 늘었고 2013년 이후 가장 많다. 하지만 자살률이 높다는 지적이 그동안 많이 나왔기 때문인지 큰 이슈가 되진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자살률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자살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보면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 수 있다. 또 높은 자살률은 사회적 정책적 무관심의 결과이기도 하다.

자살과 정신건강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정책적 노력과 재정적 투자로 상황을 개선시킨 국가로는 핀란드 덴마크 일본 등이 꼽힌다. 정신건강 관련 법과 제도는 한국도 이들 국가에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법과 제도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과 인력을 갖추고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보건 예산 중 정신보건 예산이 2% 안팎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5% 이상으로 올리지 않는다면 어떤 해결책을 내놓더라도 효과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정신건강정책 혁신 방안을 발표했고 올해 6월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앞으로도 정신건강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개선,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거버넌스 구축이 이어져야 한다. 다양한 부처와 기관이 협력하며 통합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하고,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신건강 문제를 의료적 접근으로만 해결할 순 없다. 빈곤과 실업, 불평등, 사회적 고립 등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을 보완하는 종합적인 정책이 동반됐을 때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 전체가 협력해야 하고 국민의 사회문화적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 의료 전문가들은 27일 서울 중구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정신건강의 날 행사를 연다. 진료실 밖에서 정신건강 서비스 소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연대하겠다는 취지다.

그룹 O15B가 1991년 발표한 ‘4210301’이란 제목의 노래는 당시 사회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언뜻 난해해 보이는 7자리 숫자는 당시 환경처 대표전화 번호였다. 환경 문제와 자살 문제는 사회적 무관심을 비롯해 복합적 요인이 작용해 발생한다는 면에서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 지난해 자살자 수인 ‘13978’을 우리 사회에서 무겁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이 같은 다양한 접근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참 무겁고 쓸쓸한 가을이다.



안용민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