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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작은 마을을 ‘별’로 띄우기[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입력 | 2024-10-24 12:00:00


이달 초, 남프랑스 일대를 둘러볼 기회가 있어 다녀왔다. 남불 혹은 프로방스라고도 불리는 그 땅은 어찌나 풍요로운지. 그곳의 대표 휴양지인 니스에서는 이 계절에도 해수욕과 바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는데 연평균 기온이 14∼15도라 1년 내내 물놀이가 가능하다고. 온화하게 쏟아지는 볕, 그 볕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올리브 나무, 여름용과 겨울용이 따로 있는 트러플, 하이킹과 캠핑을 부르는 굽이굽이 깊고 아름다운 숲과 계곡….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매일이 볕’이고 ‘매일이 화창’인 그 땅을 여행하면서 19∼20세기 초, 왜 그토록 많은 인상파 화가가 그곳을 유토피아 삼아 떠났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로 피카소, 폴 세잔, 샤갈, 고흐, 마티스, 르누아르는 이곳에 머물며 빛으로 자극받고 빛으로 위안받았다. 피카소는 앙티브라는 소도시에도 머물렀는데 푸른 지중해를 거닐며 만난 나무와 새를 자주 그렸고,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졌는지 입체적이던 그림이 이전과 비교해 한결 단순해진다. 세잔은 볕을 받은 사과와 생트빅투아르산을 탐구하듯 그렸고 르누아르는 집 마당에 자리를 잡고 볕 속에서 올리브 나무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인상파가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었던 건 당대의 화가들이 단순히 빛의 색채와 질감에 매혹되어서가 아니라 ‘빛의 인상’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표현하기가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르누아르가 말하길 “빛이 시시각각 바뀌어서 올리브 나무를 그리기가 참 어렵다”. 그들에게 빛이 쏟아지는 풍경은 축복이자 자극임과 동시에 더 잘 그려내고 싶은 도전이기도 했다.

남프랑스가 세계적 관광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마르세유나 엑상프로방스 같은 대도시도 물론이지만 이곳의 진정한 ‘에이스’들은 그 옆에 둥지를 틀고 있는 작은 마을들이었다. 일정표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 등장했다. 그렇게 알프코트다쥐르에 있는 작은 마을 무스티에생트마리(Moustiers-Sainte-Marie), 보랏빛 라벤더 풍경으로 유명한 고르드(Gordes), 카뮈의 묘지가 있는 루르마랭(Lourmarin)을 찾았다.

풍경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테고 내가 이곳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은 마을을 키우는 프랑스의 ‘전략’이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강력한 매력의 이 라벨 시스템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82년. 거주 인구는 2000명 이하여야 하고 기념할 만한 모뉴먼트 시설이 2개 이상이어야 하는 등 승인 조건이 까다로운데 ‘합격률’이 20% 정도에 불과할 만큼 지원율과 경쟁률이 세다. 현재 프랑스 전역을 통틀어 이 라벨을 받은 마을은 181곳. ‘종신제’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점검과 평가를 거쳐 공신력이 높다. 프랑스 공영 방송인 ‘France2’에서는 이를테면 가장 아름다운 마을 경쟁 프로그램인 ‘Le Village Pr´ef´er´e des Fran¤ais’를 방영한다. 매년 약 14개 마을이 후보지로 올라오고 저마다 마을의 건축, 문화유산과 자연경관,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열렬히 자랑한다. 프랑스에 30년간 거주한 친구에게 들으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전거 경주 대회 중 하나인 ‘투르 드 몽드’가 인기인 이유도 자전거가 지나가는 지역의 문화와 자연경관, 먹거리 등을 열심히 보여주는 덕분이라고. 레스토랑에 별을 매기는 미슐랭가이드를 처음 선보인 데서 보듯 프랑스는 마케팅 천재. 마을 경쟁 프로그램이라니, 참 잘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남프랑스에 다녀온 후 종종 이런 꿈을 꾼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3, 4곳을 묶어 일주일 정도씩 머물며 한 달 살기를 하는. 평온하면서도 다채로울 것 같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