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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베토벤 프리즈’와 만난 한국 현대미술 [영감 한 스푼]

입력 | 2024-10-25 10:00:00


Gustav Klimt, Beethoven Frieze,:  Typhoeus, Lasciviousness, Wantonness, and Imtemperance, 1902, photo: Jorit Aust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을 찾는 여행객이 많습니다.

그런 클림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길이 34m, 높이 2m에 달하는 대형 벽화가 있습니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토대로 한 ‘베토벤 프리즈’입니다.

1900년을 전후로 오스트리아 빈은 격동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유럽 전역은 아카데미를 거부하고 바르비종, 인상파처럼 아방가르드 예술의 바람이 불었고, 그런 가운데 마지막까지 왕정을 유지했던 빈 사회는 탐미주의로 빠져들었죠.

땅 위로는 화려한 도시가, 그 밖에는 빈곤과 범죄가 가득한 모순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안은 빈은 사회주의에 경도된 ‘레드 비엔나’로 기울었다가, 그 후에는 나치 점령되며 극단을 오고 가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Gustav Klimt, Beethoven Frieze: The Arts, Choir of Angels, Embracing Couple, right wall, 1902 Photo: Jorit Aust

이 중 ‘탐미주의’가 넘쳐났던 빈의 분위기를 담은 예술이 바로 클림트의 화려한 작품들입니다.

그런 역사를 담은 작품 옆에 한국의 현대미술이 처음으로 제대로 소개됐습니다. 그 현장을 직접 가보게 되어 오늘 뉴스레터로 소개합니다.


‘황금 양배추’ 속 DMZ

오스트리아 빈 제체시온의 모습. 19세기 합스부르크 제국의 화려한 건축물들로 가득한 ‘링슈트라세’(순환도로)에서 홀로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건물 위 구 형태의 조형물 때문에 ‘황금 양배추’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사진 빈=김민.

빈의 미술관인 ‘제체시온’은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로 유명합니다. 제가 찾은 날에도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문을 열기 전부터 관객들이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그중에는 현지 미대 학생들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이 클림트의 작품만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꾸준히 기획전을 여는 현대미술관이기 때문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와 함께 전시된 한국 작가 그룹 이끼바위쿠르르의 ‘랩소디’. 사진 빈=김민

이곳에서 오스트리아에 처음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제대로 소개하는 전시 ‘그림자의 형상들’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이 기획한 이 전시의 출발은 2012년부터 비무장지대에서 열리고 있는 ‘리얼 디엠지’. 즉 ‘황금 양배추’ 미술관 속에 한국의 비무장지대에서 출발한 여러 사유를 다룬 현대미술전이 펼쳐진 것입니다.

임민욱의 ‘커레히-홀로 서서’(뒤편)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상상의 끝III’. 사진 김민

이 전시는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위 사진이 전시장 입구로 들어섰을 때 처음 만나는 광경인데, 아르헨티나 출신인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대형 설치작품이 보입니다.

1969년 달 착륙 풍경을 재해석한 것으로, 가운데 아주 무거운 머리를 하고 있는 인물이 인상적입니다. 이 인물의 손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이 쥐어져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탐사 경쟁, 그리고 찬란하지만 제국주의를 떠올리게도 하는 그리스 고전주의 예술품 등을 통해 작가는 냉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뒤로 펼쳐진 임민욱의 ‘커레히-홀로 서서’는 군용 모포에 그린 그림인데요. 군에서 병사는 몸도 생각도 자유롭게 할 수 없지만, 모포를 덮고 자는 꿈까지는 통제할 수 없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작품입니다. 이 뒤로는 이불 작가가 DMZ 감시 초소에서 나온 철조망으로 만든 ‘오바드 V’도 전시됐습니다.

Forms of the Shadow, installation view with works by Young In Hong (left), Lee Bul (center), Tomoko Yoneda (right), Secession 2024, photo Iris Ranzinger



냉전의 그림자는
이주, 분쟁 등
세계의 여러 그림자로….
이 전시가 DMZ에서 시작했지만 장소는 오스트리아인 만큼 그 내용은 냉전이나 분단에서 출발해 다른 현대사회의 문제들로 확장됩니다.

튀르키예 작가 닐바 귀레시는 수십 년간 분쟁으로 인프라가 심각하게 부족해진 동부에서 전화 신호를 잡기 위해 동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영상에 담습니다.

Forms of the Shadow, installation view with works by Nilbar Güreş (front), Minouk Lim (back), Secession 2024, photo_ Iris Ranzinger

라미로 웡의 ‘이주에 관한 노트’ 연작은 음식을 먹고 남은 그릇을 한데 모아 포장한 뒤 여행 가방에 넣어 굳힌 작품을 보여줍니다. 이 작가는 전시하는 지역마다 그곳의 재료로 자신이 태어난 곳의 전통 요리를 합니다. 완벽히 재현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동떨어진 것도 아닌 음식의 맛을 통해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Forms of the Shadow, installation view with work by Ramiro Wong, Secession 2024, photo Iris Ranzinger

제주의 버려진 리조트에서 음악가, 미술가, 시인, 반군국주의자, 환경운동자, 이주민, 퀴어 등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계급과 분열 위에 세워진 세계를 끝내기 위해 장례 의식을 치르는 영상 작품도 상영됩니다. 제인 진 카이젠의 ‘이 질서의 장례’입니다.

Forms of the Shadow, installation view with work by Jane Jin Kaisen, Secession 2024, photo Iris Ranzinger



“‘쿨한’ 한국,
더 깊은 모습 알게 돼“
전시를 함께 관람한 제체시온의 큐레이터 베티나 스포르는 오스트리아의 최근 선거 결과(극우파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음)를 언급하면서, 전쟁의 공포에 관해 이야기했었는데요. 이렇게 한국의 분단 문제에 대해 현지 큐레이터, 작가들은 진지하게 관심을 표했습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제체시온 관장실. 작가와 건축가로 이사회가 구성되는 제체시온은 투표로 관장을 뽑는다. 인터뷰에는 항상 이사 2명이 함께한다고. 이날은 급히 인터뷰를 하게되어 다하 관장이 베티나와 함께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진: 김민

전시를 열게 된 과정에 대해 관장인 라미쉬 다하를 만나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술가인 다하는 팬데믹 기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한국 대중문화를 많이 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는 대중매체를 통해 ‘쿨한’ 한국과 ‘끔찍한 독재 국가’ 북한의 이미지가 일반인이 갖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Forms of the Shadow, installation view with works by Kyungah Ham (left), Ramiro Wong (right), Secession 2024, photo Iris Ranzinger

그는 중개인을 통해 북한의 전통 자수 공예가에게 의뢰해서 만든 함경아 작품의 제작 과정을 보고 놀랐다고 털어놨습니다.

또 “오스트리아는 20세기 두 차례 세계 대전과 냉전을 겪었고, 최근에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으로 확전될 거라는 우려, 극우파의 압박 속에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아직도 냉전이 진행 중인 한국의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또 한국 미술 작품을 초청하고 싶었다고 그는 밝혔습니다.

“제체시온은 클림트의 작품도 있지만, 지금도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현대미술관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와 정치에 관해서도 적극 참여하고 발언하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예술가를 통해서도 우리가 배울 점이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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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