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 때문에 대선에서 진 힐러리 “해리스 당선 음해하는 시도 있다” 대선 판세 결정짓는 ‘옥토버 서프라이즈’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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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오른쪽)이 소셜미디어 올린 젊은 시절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만난 사진. 해리스 후보를 향한 ‘옥토버 서프라이즈’ 시도가 있을 것을 우려했다. 힐러리 클린턴 인스타그램 캡처
I anticipate something will happen in October, as it always does. There will be concerted efforts to distort and pervert Kamala Harris.”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10월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다. 카멀라 해리스를 왜곡하려는 집중적인 노력이 있을 것이다)‘October Surprise’(10월의 이변). 미국 대선을 일주일 정도 앞둔 지금, 후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입니다. 대선은 언제나 11월 첫째 화요일에 열립니다. 대선 전 달인 10월에 벌어지는 사건을 ‘옥토버 서프라이즈’라고 합니다. 대선 한참 전에 벌어졌다면 별일 아니었을 사건도 대선을 코앞에 두고 터지면 임팩트가 다릅니다. 시기적 근접성 때문입니다. 유권자들은 사건을 염두에 둔 채 투표소로 향하게 됩니다.
올해 대선은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그래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걱정이 되나 봅니다.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를 음해하려는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있을지 모른다고 합니다. ‘as it always does’는 ‘언제나 그랬듯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대선을 요동치게 만드는 존재 옥토버 서프라이즈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1980년 대선 때 로널드 레이건 후보(왼쪽)의 선거본부장으로 ‘옥토버 서프라이즈’라는 단어를 만든 윌리엄 케이시(오른쪽).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Carter would use the advantage of incumbency to spring an event that would benefit him politically. That could be an October Surprise.”
(카터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건을 터뜨릴 수 있다. 옥토버 서프라이즈다)옥토버 서프라이즈 단어를 만든 장본인은 1980년 대선 때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 진영의 윌리엄 케이시 선거본부장입니다. 레이건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나중에 중앙정보국(CIA) 국장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레이건 후보는 지미 카터 대통령을 앞서고 있었지만, 고민이 있었습니다. 카터 대통령이 이란과의 인질 석방 협상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선거 뉴스보다 인질 뉴스가 더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카터 대통령이 협상을 성공시킨다면 막판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미 석방 확답을 받아 놓았고, 선거 직전에 빅뉴스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케이시 선거본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문제의 단어를 처음 썼습니다. 지지자들에게 협상 여부를 지켜보라는 당부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큰 공을 세운 터스키기 부대. 전원 흑인 조종사들로 이뤄졌다. 터스키기 대학 홈페이지
I’ve always heard colored people can’t fly, but I see them flying around here.”
(유색 인종은 조종할 수 없다고 자주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들이 조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군대, 특히 공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아는 단어가 있습니다. 터스키기(Tuskegee) 부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전설의 흑인 조종사 부대입니다. 터스키기 부대가 설립된 배경에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있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0년 3선에 도전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전례가 없는 정권 연장 시도에 여론은 좋지 않았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의 수혜자인 흑인 표에 기대를 걸었는데 마침 흑인 표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루즈벨트 고위 참모가 유세 때 흑인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참모의 성의 없는 사과로 흑인 사회 분위기는 격앙됐습니다. “Since one officer believes I was responsible for hurting him, I wish to apologize.”(흑인 경관은 내가 상처를 입혔다고 믿고 있으니 일단 사과하겠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선을 이틀 앞두고 흑인 조종사 부대인 터스키기 에어맨(Tuskegee Airmen) 설립을 발표했습니다. 막판에 나온 옥토버 서프라이즈였습니다. 당시 군대는 인종차별이 심했습니다. 백인과 흑인은 분리된 숙소에서 살고 훈련도 따로 받았습니다. 흑인은 지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복잡한 기계를 다루는 조종사로 뽑지도 않았습니다. 터스키기라는 이름은 앨라배마 터스키기 공군기지에서 유래했습니다. 남부 백인 세력의 아성인 앨라배마에 최초의 흑인 조종사 양성 시설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지휘관으로 벤저민 데이비스 주니어 준장이 임명됐습니다. 데이비스 주니어는 흑인 최초로 준장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1941년 퍼스트레이디 엘리너 루즈벨트 여사의 방문으로 터스키기 부대의 위상은 높아졌습니다. 흑인 조종사가 모는 전투기에 탑승해 엘리너 여사는 인종화합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흑인을 ‘negro’라고 부르던 시절에 ‘colored people’(유색 인종)이라고 예의를 갖췄습니다. 엘리너 여사는 흑인 조종사들을 제2차 세계대전에 배치하도록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1943년 북부 아프리카 전선을 시작으로 1945년 종전 때까지 터스키기 부대는 1만 5000회 출격과 150회 수훈 비행 십자상(Distinguished Flying Crosses) 수상이라는 화려한 성과를 남겼습니다.
1972년 대선을 2주일 앞두고 열린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의 베트남 평화협정 기자회견.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Peace is at hand.”
(평화가 임박했다)1972년 재선에 도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전 해결이 급선무였습니다. 베트남전 철수로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정면 돌파할 계획이었습니다. 대선 한 달 전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선거일 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파리로 급파했습니다.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은 3자 협상에 돌입했습니다. 키신저 보좌관은 대선을 2주일 앞두고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계획했습니다. 타결될 듯하던 협상이 결렬됐지만 상관없었습니다. 대선에 맞춰 굿뉴스를 전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키신저 장관은 파리에서 워싱턴으로 날아와 성급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at hand’는 시간상으로 ‘임박하다’, 공간적으로 ‘근접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제 평화가 눈앞에 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협정이 타결된 것은 닉슨 대통령 당선 후입니다. 파리에서 워싱턴으로 동분서주했던 키신저 보좌관은 협정 체결을 중재한 공로로 1973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명언의 품격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 취임 후 인사를 나누는 제임스 코미 미연방정보국(FBI) 국장. 백악관 홈페이지
세상은 공평한 법. 트럼프 후보의 섹스 테이프가 폭로된 날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소수약자 배려를 내세우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월가 갑부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증거로 고액 강연료 정황과 내부 연설문을 공개했습니다. 힐러리 후보는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치명타는 아니었습니다. 진짜 사건은 대선을 11일 앞두고 터졌습니다. FBI는 힐러리 후보의 e메일 재수사를 발표했습니다. e메일 게이트는 힐러리 후보가 국무장관 시절 공무용 e메일이 아닌 자택에 구축한 개인 e메일 서버로 공문서를 주고받았다는 논란입니다, FBI가 이미 불기소 결정을 내린 사건인데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갑자기 재수사 개시를 밝혔습니다. 이전에 조사하지 못한 e메일들이 추가로 발견됐다는 이유였습니다.
I was dumbfounded”
(어이 상실했다)힐러리 후보의 반응입니다. ‘dumbfound’(덤파운드)는 ‘dumb’(바보)에 ‘found’(발견된)가 붙은 것처럼 보이지만 ‘confound’(당혹하게 만들다)가 붙은 것입니다. 형용사처럼 보이지만 동사입니다. ‘be dumbfounded’라는 수동형으로 많이 씁니다. 왜 지금 시점에 재수사를 개시하는지 놀라서 말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힐러리 후보의 범법자 이미지가 부각됐습니다. 코미 국장은 “FBI 본연의 업무를 수행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트럼프-코미 내통설이 돌았습니다. 섹스 테이프로 수세에 몰렸던 트럼프 후보는 연일 “Lock Her Up”(그녀를 잡아넣어라) 구호를 외쳤습니다. 대선을 이틀 앞두고 FBI는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라며 재수사를 종결했지만, 유권자들이 기억하는 것은 재수사 개시였습니다. 힐러리 후보는 범죄 의혹을 지우지 못하고 대선을 치렀습니다. 힐러리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대선 패배 이유입니다.
실전 보케 360
올해 2월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 테슬라의 엔지니어링 본사 설립 계획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만난 일론 머스크(왼쪽)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오른쪽). 캘리포니아 주지사 홈페이지
그동안 머스크와 뉴섬 주지사는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왔습니다. 머스크는 뉴섬 주지사가 서명한 성소수자(LGBT) 사생활 보호법에 반발해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 소유의 X(옛 트위터)와 스페이스X 본사를 텍사스 오스틴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할 정도였습니다. 이번 로켓 발사 건도 머스크와 뉴섬 주지사가 한바탕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례적으로 뉴섬 주지사는 이렇게 밝혔습니다.
You got to call balls and strikes.”
(위원회는 공정해야 한다)영어에는 야구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많습니다. ‘call balls and strikes’도 그중 하나입니다. 야구에서 심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balls and strikes)인지 부르는(call) 것입니다.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단할 때는 편파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call balls and strikes’는 ‘야구 심판처럼 공정하게 행동하다’라는 뜻입니다. 뉴섬 주지사는 해안위원회의 결정이 머스크를 미워하는 정치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0년 10월 26일 소개된 미국 대선일 풍경입니다. 미국에서 대선일은 공휴일이 아닙니다. 직장인들은 일하다가 시간을 내서 투표하러 갑니다. 투표율이 낮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선거일은 평일과 비슷합니다. 한국처럼 느슨한 ‘노는 날’ 분위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투표 시간이 끝나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마치 축제 같은 개표 방송이 펼쳐집니다. 최신 기술을 동원한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개표 방송이 시작되면 퇴근한 유권자들은 마치 슈퍼볼을 보는 것처럼 TV 앞으로 모여듭니다.
▶2020년 10월 26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1026/103622275/1
2020년 미국 대선 개표 방송. ABC뉴스 홈페이지
The rush to be first could result in getting it wrong.”
(첫째가 되려는 서두름은 틀린 결과를 낳을 수 있다)투표 마감 종이 땡 울리면 개표 방송이 시작됩니다. 화면이 번쩍거리고 출구조사에 근거해 예상 승자를 발표하는 순간입니다. 실시간 개표 방송을 하는 언론사는 6개. CNN, 폭스뉴스, MSNBC는 시청자층이 확 갈립니다. 지상파 3사(NBC, ABC, CBS)는 비교적 중립적이라 채널 돌리다가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봅니다. 최근 선거위기태스크포스(NTFEC)라는 언론 감시 단체는 개표 방송사들에 이런 호소문을 보냈습니다. 정확한 선거 보도 원칙을 준수해 달라는 겁니다. ‘get it wrong’은 ‘잘못 이해하다’라는 뜻입니다.
There‘s a good chance we won’t have a clear winner in the wee hours of the morning.”
(선거 다음 날 새벽까지 확실한 승자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선거 방송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사전 우편투표 집계입니다. 우편투표는 봉투를 여는 과정 때문에 개표에 시간이 걸립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우편투표가 크게 늘었습니다. 언론 연구기관 포인터 인스티튜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wee hours of the morning’은 자정부터 새벽까지를 말합니다. ‘wee’(위)는 ‘작은’이라는 뜻입니다. 이때는 1시 2시 등 작은 숫자의 시간대라서 ‘wee hours’라고 합니다.
Keep your phone out of the bedroom to resist the temptation of social media.”
(소셜미디어의 유혹을 벗어나려면 휴대전화를 침실 밖에 둬라)밤늦게까지 선거 방송을 보다가 침실로 가서 잠을 청하려고 하면 이번에는 휴대전화로 소셜미디어에 들어가 개표 상황을 체크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가 밤을 새우게 됩니다. 전미수면학회(AASM)의 충고입니다. 스마트폰을 분신처럼 여기는 시대에 이런 충고가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