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기업 팔란티어 조셉 리 한국 공공부문 대표 AI로 저비용-고효율 전쟁 가능해져… 北핵과 미사일 억지력도 높일 수 있어 AI가 인간의 창의성 대체는 어려워… 우수한 AI 인재들은 윤리도 중요시 韓, ‘AI 3대 강국’ 되려면 혁신 강화를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 팔란티어의 조셉 리 한국 공공부문 대표는 23일(현지 시간) “한국은 방위 산업뿐만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도 AI 발전 잠재력이 크다”며 “AI 분야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혁신 문화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팔란티어 제공
《“세계는 지금 새로운 ‘오펜하이머의 순간(Oppenheimer Moment)’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 ‘팔란티어’의 알렉산더 카프 최고경영자(CEO)는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AI가 미칠 영향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원자폭탄을 만든 뒤 “나는 이제 죽음이자, 세계를 파괴하는 자가 됐다”고 고뇌한 오펜하이머처럼 AI가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진보로 이끌 수도, 참혹한 파괴로 끌어내릴 수도 있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다.》
AI는 흔히 미래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꼽히지만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탈(脫)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에선 AI를 탑재한 무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또 글로벌 팬데믹 대응 등 보건복지 분야부터 기업 경영까지 AI는 불가능을 현실로 바꾸는 ‘마법의 도구’처럼 주목받고 있다. 올해 노벨 과학상을 AI를 연구한 학자들이 휩쓴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일각에선 ‘AI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한국은 글로벌 3대 AI 강국을 목표로 내거는 등 주요국들은 앞다퉈 AI 투자에 사활을 걸고 있다.
AI가 불러오는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 중 하나가 ‘팔란티어’다.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과 러시아군에 맞선 우크라이나군의 선전, 대규모 금융 사기 적발까지 세계를 흔든 사건들의 뒤에서 미국 정보기관을 지원한 팔란티어는 공개된 정보가 적어 흔히 ‘은둔의 기업’으로 불린다.
―팔란티어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팔란티어에는 2020년 입사했다. 공군 통역장교를 거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한국형전투기사업(KFX) 등에 참여한 뒤 프랑스 유학 당시 강사였던 팔란티어 프랑스 지사장의 제안으로 팔란티어에 합류했다. 당시 팔란티어는 에어버스의 제조 전반에 걸쳐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전투기 사업에 참여했던 경험으로 당시엔 그런 복잡한 수준의 생태계 관리를 AI 기술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기술이 실제로 구현되는 것을 보고 2020년 팔란티어에 들어갔다. 현재 팔란티어는 20여 개 해외 지사를 두고 있는데 2022년 문을 연 한국도 그중 하나다.”
―팔란티어 AI 기술의 특징은….
“가장 큰 특징은 데이터 관리와 분석 접근 방식이다. 팔란티어는 애초에 전쟁이나 팬데믹과 같은 예측할 수 없는 대혼란의 상황에 대비해 수집된 데이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온톨로지(Ontology·사물의 개념과 다른 사물과의 관계를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라는 철학적인 개념을 도입한 AI 플랫폼이라는 게 (다른 AI 소프트웨어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감당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기반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AI는 난제였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면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AI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겪고 있는 고령화 문제 역시 AI를 통한 생산성의 향상으로 사회 전반에 미칠 부작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국방 분야와 보건 분야에선 이미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영국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당시 AI 플랫폼을 통해 특정 지역의 코로나19 폭증 전조를 읽고 중앙관리기구가 인력을 투입하고 백신 배포 계획을 짜 실행하는 데 활용됐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팔란티어는 AI를 인간의 지능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본다.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생성형 AI는 어떤 단어를 주면 가장 높은 확률로 맥락에 맞는 단어를 제시하는 방식인데 이런 AI가 인간의 창의적인 영감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딥페이크 등 AI 기술이 민주주의의 위협으로도 지목받고 있다.
―AI 무기 개발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국방 분야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미 AI를 활용한 전술과 표적 관련 신기술이 많이 사용되고 검증됐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AI 신기술을 탑재한 드론이 나오면 러시아가 이를 해킹해 대응하고 이에 또 다른 신기술을 개발하는 등 끊임없는 기술 진화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AI 무기가 핵무기만큼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AI가 핵무기와 같은 파괴력이 있다는 것은 AI 무기의 중요성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전쟁은 정보 수집과 작전 같은 전쟁 수행 능력과 군수·생산력 등 전쟁 지속 능력이 분리돼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전쟁 수행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AI 소프트웨어가 있다면 저비용·고효율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될 수 있다. AI로 복잡한 표적을 관리해 1000억 원 상당의 미사일을 30억 원짜리 무기로 격추하는 게 미래 전장의 모습이다.”
―한국의 핵 억지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나.
“AI는 핵 억지력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북한 미사일에 대해 가장 효율적인 계산을 통해 (북핵·미사일에 맞서 구축하고 있는) ‘킬체인(kill chain)’ ‘3축 체계’ 중 가장 높은 확률과 낮은 비용으로 타격할 수 있는 체계를 찾아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우리 대공망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교리와 체계들이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교리들이 실제로 검증된 적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AI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 실제 전쟁에서 쓰이지 않았던 기술들의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
―한국과도 AI 무기 개발에 대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나.
“한국 정부와 방산 기업과도 여러 사업에서 협력하고 있다. 많은 선진국이 중국 아웃소싱에 의존하면서 제조업 기반을 상실한 탓에 한국 방위산업은 서방 진영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래 전쟁의 핵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갔다고 인식하고 AI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를 찾는 문의가 많다. 주한미군과도 AI 임무 제어와 동적 표적처리 자동화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한미 연합작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AI 기술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충분히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북한이나 중국 같은 독재 국가들은 AI를 악용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고 규제나 윤리적인 고민 없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AI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기술이고, 뛰어난 인재들이 어디에 더 많이 모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우수한 인재들은 규제와 윤리가 존재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할 것이다. AI 인재풀의 질적인 면에서 서방 국가들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AI 기술은 미중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인데….
“AI 기술은 이미 미중 블록화가 시작됐다고 본다. AI 기술 역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각국은 자신들만의 기술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AI 규제도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인식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중도 그렇겠지만 한국도 한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AI 엔지니어들을 양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에 해 줄 조언이 있다면….
“한국이 AI 분야에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문화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기술의 발전은 연구개발, 상용화, 그리고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혁신을 촉진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게 꼭 필요하다. 또 최고의 인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과 같은 규모는 갖추기 어렵지만, 한국만의 강점인 상용화 능력과 민첩성을 바탕으로 한국이 AI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조셉 리 팔란티어 한국 공공부문 대표△ 1986년 경북 포항 출생
△ 2011년 고려대 법학사, 경영학사
△ 2014년 국방부 국방정책실 유엔교류협력 담당장교
△ 2018년 한국항공우주산업 KF-X 사업/APT 사업 계약 담당 과장
△ 2020년 프랑스 파리경영대(HEC Paris) 경영학 석사, 파리정치대(Sciences Po) 정책학석사
△ 2020년 팔란티어 런던 사무소 공공부문 사업기획 담당
△ 2024년 팔란티어 국제사업본부 한국 공공부문 대표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