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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반환점 돌려면 ‘육아의 공포’를 걷어내야 한다[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입력 | 2024-10-25 14:00:00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25일 오후 인천의 한 병원 신생아실이 갓 태어난 아기들로 가득 차 있다. 동아일보DB

“○○이 보고 싶다, 그치?”
벌써 몇 번째 아이들에게 되묻고 있었다. 둘째가 친구 생일 기념 ‘파자마 파티’를 한다며 생애 처음 외박한 날, 어쩐지 휑뎅그렁한 저녁 식탁을 보며 남은 아이들에게 계속 둘째 없으니 허전하다, 둘째 벌써 보고 싶다 되뇌었다. 고작 하룻밤 외박이고 아이가 넷에서 셋이 됐을 뿐인데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허전함’이라니. 넷인 삶에 적이 익숙해졌던가 보다.

많은 사람이 “넷을 키우다니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지내다 보면 ‘뉴노멀’에 익숙해지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 키우는 기쁨이 힘듦을 상쇄하고도 남아 힘들단 생각보단 행복하단 생각이 크다. 아마 부모들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각자의 사정과 생각이 다르기에 남에게 출산을 권하진 않지만, 육아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소식은 여러 의미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8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출생아 수가 2만명을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 늘면서 두 달 연속 증가했다.혼인 건수는 1만 7527건으로 20% 늘어 다섯 달 연속 증가했다. / 뉴스1

● “올해 출산율 반등할 것 같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출생아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000명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런 증가세는 두 달째다. 2024년 8월 출생아 수는 2023년 8월에 비해 1124명(5.9%) 증가했다. 7월에도 1516명 늘어 12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최근 방문한 한 저출산 토론회에서 정부 측 자문역을 맡고 있는 한 전문가는 “올해 출산율이 반등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출생아 수뿐 아니라 미래 출산을 가늠할 수 있는 몇몇 지표들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공개한 결혼·출산·양육 및 정부 저출생 대책 인식 조사에서도 결혼과 출산 의향을 묻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이 3월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2000여 명 조사가 전 국민을 완벽히 대표했다고 하긴 어렵고 ‘의향이 있다’가 반드시 ‘한다’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기존에 늘 언론지상을 장식했던 ‘의향이 줄었다’는 설문조사 결과보다는 분명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저출산이 바닥을 찍은 걸까? 누구도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최근의 전환적인 분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동안 한국의 압도적(!)인 저출산 기록 행진엔 사회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육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사회 전반의 비관적 분위기 영향도 컸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DB


● 육아 부정적 인식 걷어내기 급선무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청년들과 육아 이야기를 해보면 예외없이 ‘무섭다’, ‘감히 엄두가 안 난다’ 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 육아는 물론 힘들고 어렵다. 그런데 무섭고 감히 엄두가 안 날 정도의 일일까. 이런 말은 (내 기준에선) 번지점프를 하거나 귀신의 집에 들어갈 때나 쓰는 말이다. 육아가 그런 일일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많은 청년이 육아에 대해 이런 표현을 썼다.

그만큼 육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하다는 뜻일 터다. 한양인구문제연구원 인구사회문화 연구센터가 올 6월부터 10월까지 10대 이상을 대상으로 결혼·출산·육아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단어를 설문조사했다. 결과는 행복, 감동이라는 단어를 꼽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의무, 스트레스, 고통이라는 단어를 꼽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육아에 대해선 행복, 감동보다 의무, 스트레스를 떠올린 사람이 더 많았다. 상위 4개 단어가 ‘아기’라는 중립적인 단어를 제외하면 모두 부정적이었다. 설문엔 두려움이나 공포 같은 말은 없었지만, 위험, 후회 같은 단어가 적잖이 꼽힌 걸 볼 때 두려움, 공포가 있었으면 그를 뽑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청년뿐 아니라 기혼자들과 이야기를 나눠 봐도 육아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만연했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순간들이 분명 많았을 텐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라 하면 ‘힘들다’, ‘후배들에겐 낳지 말라 한다’, ‘아이는 최대한 늦게 가지는 게 좋다’ 같은 이야기들이 자주 나온다.

아이를 좋아하고 키우고 싶었던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으면 겁에 질릴 수밖에 없다. 앞서 7, 8월 출생아 수 증가는 그 선행지표인 혼인이 늘어난 영향도 큰데, 육아에 대한 공포가 만연할 시 향후 결혼이 늘더라도 출산은 그만큼 따라 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의 저출산 대응책 발표 모습. 동아일보DB

● 두려움 부추기는 “심각, 위기” 경고

육아에 대한 인식이 왜 이렇게 부정 편향되었을까. 원인을 한두 가지로 단정할 수는 없다. 사회경제적인 어려움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아이 키울 때 들어가는 품과 비용, 부모들의 ‘바이탈부터 멘탈까지 탈탈’ 털어가는 현실 고충 사례들은 아이 키우기 좋은 집 마련은커녕 취업조차 요원한 청년들에게 두려움을 심기 충분하다.

미디어 콘텐츠의 영향도 큰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에게 ‘육아와 관련해 부정적인 모습을 주로 어디서 접하냐’고 물으면 TV, 뉴스, SNS 등 주로 미디어라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SNS에도 독박육아의 고충이나 아이 키우는 부모의 바쁜 일상을 다룬 콘텐츠가 많다.

반복된 저출산 위기 경고가 외려 역효과를 냈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과 각종 콘텐츠에서 심각하다, 위기다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저출산 인식을 고착화하고 젊은 세대로 하여금 육아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앞서 한양인구문제연구원 조사에서 ‘저출산 극복 관련 미디어’를 유형별로 나눠 선호도를 조사했는데 저출산 심각성을 강조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이들은 감성적 광고, 정보를 담은 공익광고를 본 사람들과 비교해 결혼·출산 의향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청년들을 인터뷰했을 때도 “저출산 위기 경고가 지긋지긋하다”, “더 애를 낳지 말란 말로 들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 안 낳아도 되지만 ‘못’ 낳는 사람 없게

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개인의 선택이고 거기에 옳고 그른 것은 없다. 하지만 무서워서, 엄두가 안 나서,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아이를 ‘못’ 가지는 사람이 많다는 건 문제가 있다. 지금 청년 중엔 그런 사람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이런 가운데 나온 결혼·출산 의향과 출생아 수 증가 소식은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여러 제도적 보완과 함께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는 것이라면 거대한 초저출산의 추세에도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생대응수석도 23일 한 방송에 나와 “저출생 반전의 신호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진정 반전의 시작이 되려면 청년들에게 지속해서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넷 키우니 힘들겠다’가 아니라 ‘넷 키우니 행복하겠다’는 말을 듣는 날이 올까. 정부의 세심한 정책 운용을 기대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