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해법, 해외서 길을 묻다] “의사 수 늘리고 필수의료 강화”… 韓과 고민 같지만 접근법 달라 해외유출 막고, 지방의료 키우기 정부-의료계 속히 대화 나서야
20일 서울 서초구에선 캐나다에서 의사가 되려는 의대생과 전공의 등을 위한 유료 설명회가 열렸다. 참석자 140명을 모집했는데 신청자는 200명 이상이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박성민·정책사회부
네덜란드에서 방문한 의료인력수급추계기구(ACMMP)는 ‘오래 계획하고, 자주 추계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이 기구 관계자는 “의사 수 추계의 핵심은 정확한 사실에 기반해 수요와 공급이 조화되는 지점을 찾는 것”이라며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의사들이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했다. 정부가 발주한 보고서 등을 근거로 ‘2000명 증원’을 덜컥 발표한 한국 정부와 대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의사단체는 여전히 “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상에는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도 포함된다. 미국 오하이오주 대형병원에서 만난 전임의는 “미국에선 충분히 휴식해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주 50시간 근무가 일반적이다. 해외 우수 인재들이 모여드는 이유”라고 했다. 한국 필수의료 전문의가 주 80시간 이상 일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일본의 경우 지방의료 강화를 위해 지역의사제를 도입했다. 현지에서 만난 일본 의사는 “의대 증원만으론 지역 의료 공백을 해소할 수 없다. 그래서 점진적 증원과 함께 지방의사제를 도입한 것”이라고 했다.
또 현지 의료 관계자들은 “의사는 원하는 만큼 빨리 늘리기 어렵다”고 했다. 네덜란드 의료 연구소 관계자와 일본의사협회 관계자는 “의대생을 늘리는 건 좋은데 가르칠 사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국민 생명을 다루는 의대생 교육과 전공의 수련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관련 대책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취지였다.
캐나다에선 의대생이 지도교수와 둘이서 하루 4시간씩 2주 동안 진료하는 모습을 봤다. 의대생 6, 7명이 교수 뒤만 따라다니다 끝나는 한국의 임상 실습과는 차이가 컸다. 전공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한국의 전공의 과정을 모두 경험한 의사는 “미국은 수련 프로그램에 따라 일대일로 매칭돼 수술을 하며 체계적으로 역량을 키운다. 그런데 한국은 환자를 보면서 틈틈이 책을 보거나 교수님을 붙잡고 배워야 했다”고 했다. 한국 대형병원이 전공의를 ‘저임금 근로자’로 여기고 장시간 근로를 시키는 것과 달리 ‘교육생’으로 여기고 적절한 교육과 보상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의사단체가 참여 의사를 밝히며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협의체가 가동될 경우 최우선 과제는 당연히 의대 증원 합의일 것이다. 하지만 신뢰할 만한 의사 수 추계 시스템 구축, 필수·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로드맵 등 한국 의료를 미래로 이끌 논의 역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이번에 막대한 희생을 치른 국민에 대한 예의이면서, 정부와 선배 의사에게 실망해 해외로 떠날 준비를 하는 의대생·전공의를 멈출 방법이기도 하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