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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아편, 그들이 원해서 팔았다? 반복되는 제국주의 논리

입력 | 2024-10-26 01:40:00

양귀비 농장으로 전락한 인도 등… 식민화-수탈 숨은 이야기 담아
아편 몰아낸 세계 시민 연합의 힘… 탄소배출 감축 위한 해법 될 수도
◇연기와 재/아미타브 고시 지음·김홍옥 옮김/488쪽·2만8000원·에코리브르



소설가 겸 논픽션 작가인 고시는 제국주의가 아편의 대대적 제조와 확산을 가져왔음에도 강대국들이 이를 ‘아시아인들의 문제’로 떠넘겼다고 지적한다. 1857년 무렵 인도 파트나 지역의 아편 생산을 묘사한 그림들. 동아일보DB


이 책의 부제는 ‘아편의 감춰진 이야기’다. 중국 청나라가 아편 교역을 금지하자 영국은 1840년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열강의 동아시아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근대 세계사를 들여다보았다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저자 고시는 영국 옥스퍼드대 사회인류학 박사 출신의 인도 소설가다. 영국에서 50만 부 이상이 팔린 ‘유리 궁전’을 비롯해 여러 베스트셀러를 썼고 메디치상과 아서 클라크상을 받았다. 아편전쟁 직전을 배경으로 쓴 역사소설 ‘아이비스 3부작’은 그가 이 책에 착수하는 배경이 됐다. 이 책에서 우리는 아편과 관련해 영국과 청나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인도’를 만나게 된다.

고시가 근대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 시대가 자원을 추출하고 타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소수 백인 특권층의 역사라는 데서 출발해 왔다. 여기 더해 그는 ‘물질의 행위 주체성’을 강조한다. 전작인 논픽션 ‘대혼란의 시대’에선 화석연료가, ‘육두구의 저주’에서는 향신료가 역사를 만들어온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연기를 발생시키고 재를 남기는 아편이 그 주인공이다.

중국의 차(茶)는 18세기 초부터 영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차에 부과된 세금이 재정의 10분의 1을 차지했다. 문제는 영국이 중국에 판매할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막대한 은이 중국으로 유출됐고 이 문제의 해결책이 인도에서 생산한 면과 아편이었다.

양귀비 생산에는 집중적인 관리와 인력, 정교한 조직이 필요했다. 영국은 인도의 파트나(현재의 비하르)와 말와에 거점을 마련하고 100만 명 이상의 농민에게 양귀비를 경작시켰다. 이렇게 거대한 산업을 탄생시키고도 영국인들은 ‘아편은 전통적인 인도 약물이며’ ‘중국인들이 아편을 원하므로 자유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령 인도 제국 수입의 5분의 1이 아편에서 나왔지만 그 폐해는 아시아인들의 책임으로 돌렸다.

의외로 아편 거래에서 영국 다음으로 득을 본 나라는 미국이었다. 포브스와 루스벨트 가문을 비롯한 여러 엘리트 가문이 아편으로 초기의 부를 축적했고, 그 부의 많은 부분이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흘러 들어갔다.

식민시대의 담론 구조는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옛 제국의 대변인들은 ‘아편 무역이 중단되면 인도 농부들이 굶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에너지 회사들이 ‘화석연료 산업이 중단되면 세계 빈곤층이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전략이다. 물질로서의 아편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남긴다. 아편 성분에서 나온 헤로인 등 ‘오피오이드’ 마약이 계속해서 현대 사회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오늘날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펜타닐 역시 합성된 오피오이드다.

저자 고시는 역설적으로 아편의 시대적 궤적에서 오늘의 희망을 본다. 거대한 대영제국의 탄압 속에서도 여러 국적과 인종의 시민들이 연합해 20세기 초 아편 산업을 축소시켰다. 오늘날 환경 문제의 중심에 있는 화석연료 기업들에 대해서도 가능한 일 아닐까.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