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 할머니/안효림 지음/48쪽·1만7000원·소원나무
우리 집이 망했다. 좁은 집으로 이사 가는데, 낡은 이삿짐 트럭에 딱 하나 실린 것이 있다. 자개장. 엄마는 이게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거라서 절대로 버릴 수 없단다. 어디서든 이 자개장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단다.
하지만 방 하나를 다 차지할 만큼 거대한 이것이 아이는 싫다. 일한다고 바쁜 아빠 엄마는 늘 집을 비우고, 혼자 무료하게 뒹굴거리던 아이는 자개장의 갖은 문양을 본다. 빛나는 소나무, 구름, 나비, 학, 거북이. 하지만 나와 놀아줄 사람은 없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라도 지금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바로 그때, 자개장에서 정말로 할머니가 나온다. 자개장 할머니다. 할머니는 자개장 속의 멋진 세상을 아이와 함께 탐험하기도 하고 태권도장에 아이를 데려다주거나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기도 한다. 할머니에게서 아이는 점차 희망을 배운다. 가족 간의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도. 전통 공예인 나전칠기의 영롱한 빛깔과 풍성한 볼거리가 ‘가족의 사랑’이란 책의 주제에 깊이를 더해 준다.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작가의 신작.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