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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평생 갇혀 우는 것이 생의 전부라면

입력 | 2024-10-26 01:40:00

◇우리 시대의 동물 해방/피터 싱어 지음·김성한 옮김/456쪽·2만5000원·연암서가




전 세계 농장에는 10억 마리의 돼지, 15억 마리의 소 그리고 200억 마리의 닭이 살아가고 있다. 하나의 종(種)의 진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손에 의해 가축화돼 대규모로 번식하고,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은 이 종들에겐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개별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몸을 반대 방향으로 돌릴 수도 없는 좁은 우리에 갇혀 밀집 사육된 뒤 도살당하는 동물의 삶 말이다. 저자는 공장식 축산농장과 연구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행태로 동물들이 받는 고통은 더 커졌다고 역설한다.

신간은 1975년 첫 출간 당시 비인도적인 동물 도축에 반대하며 이후 동물권 분야의 교과서로 평가받았다. 농장 안에서 동물들에게 닥치는 일에 대한 생생한 설명으로 윤리적 논쟁을 촉발했다. 이를 계기로 동물 학대를 금하는 운동이 세계적으로 일었다. 올해 초판 발행 50주년을 맞아 개정판이 출간됐다. 저자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1999년부터 인간가치연구센터 교수로 재직하며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내용의 ‘동물권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책은 서두에서 동물권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2, 3장에선 동물실험과 공장식 양식, 도축 시스템의 실태를 지적한다. 후반부에는 ‘인간 우위론’에 기반한 종 차별주의의 부당성에 대해 논한다. 채식주의자의 사망률이나 발병 비율이 현저하게 낮음을 근거로 들면서 ‘비건 식단’을 권하기도 한다. 렌틸콩 수프, 채소·두부 볶음 등 간단한 조리법도 담았다.

49년 전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와 비교하면 최근 동물권에 대해 사람들이 훨씬 민감해진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인간이 과거보다 동물의 의식과 육체적·심리적 필요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동물 해방’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먼 듯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여름 국내의 공장식 축사에 갇혀 있다가 더위를 피하지 못하고 폐사한 동물 수는 약 115만 마리에 달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