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기획] 국내 상륙 후 선풍적 인기 ‘위고비’의 명암 한 달 투약분 50만 원대에도 인기… 인터넷에선 처방 병원 리스트 공유 일부, 비대면 진료 허점 파고들어… 비만 여부 확인 없이도 처방 받아 온라인 처방전 수령까지 1분 걸려 해외직구 사이트에선 웃돈 거래… 식약처 “가짜 가능성 있어 주의”
《비만치료제 ‘위고비’ 열풍, 괜찮을까
국내 출시된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큰 인기를 끌면서 비대면 진료를 통해 편법 처방을 받거나 불법 해외 직구를 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과열이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비만 치료제 ‘위고비’는 주사액 용량에 따라 0.25mg, 0.5mg, 1.0mg 등이 있습니다. 처음이면 0.25mg으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18일 오후 동아일보 기자가 서울 강서구의 한 이비인후과에 전화해 “위고비를 어떻게 하면 처방 받을 수 있냐”고 묻자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0.25mg으로 처방해달라고 말하자 의사는 “주 1회씩 4주 동안 맞을 수 있게 처방해드리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위고비가 국내에 처음 선보인 15일 제약사 측은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의료진을 대상으로 출시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 행사장 앞에 위고비 모형이 전시돼 있다. 뉴스1
● 한 달에 50만 원대지만 ‘선풍적 인기’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는 펜 주사기 형태로 주 1회 팔, 복부, 허벅지 등에 주사하면 된다. 한 번에 4주 투약 분량을 처방해주는데 매달 조금씩 용량을 늘리며 맞는 게 일반적이다. 임상시험에선 68주 동안 투약했을 때 체중이 평균 14.9%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유명 인사들이 투약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 출시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서 위고비 중간 유통을 맡은 쥴릭파마코리아는 15일 오전 9시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위고비 주문 접수를 시작했는데 오전 10시 반경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접속이 몰렸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도 물량이 부족하다 보니 국내 첫 유통 물량 역시 넉넉하지 않아 초반부터 병원, 약국 간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출시 첫날부터 문의 전화가 10건 이상 걸려왔다”며 “주변 약국 모두 재고가 동이 난 상황이지만 언제 추가 물량이 들어올진 모른다”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위고비를 처방 받을 수 있는 병원 목록이 담긴 이른바 ‘성지 리스트’도 공유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약값이 저렴하다고 소문난 곳은 일주일 치 사전 예약이 마감된 상태다. 투약 후기 글에도 ‘구매처를 알려달라’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 비대면 처방 꼼수도 등장
비만치료제 위고비가 국내에 출시된 직후인 1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약국에서 약사가 입고된 위고비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실제로 기자가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니 의사와 만나지 않고도 처방전을 받을 수 있었다. 앱에서 진료를 받고 싶은 병원과 약 종류를 선택하고 주민등록번호 등을 기재하자 곧 의사와 통화해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실제 비만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는데, 개인정보 입력을 끝내고 처방전 온라인 수령까지 약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국정감사에서 오유경 식약처장이 비대면 처방 대상에서 위고비를 제외할 수 있다고 밝혀 이 같은 편법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불법 해외 직구에 단속 나서
하지만 해외직구 사이트를 이용할 경우 의사의 처방을 받지 않은 채 구입하는 것이라 불법 의약품 구매가 된다. 한국노보노디스크 관계자는 “전문의약품인 만큼 의사의 처방을 받고 적절한 용량 및 사용법을 준수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식약처와 관세청은 최근 위고비 및 유사 비만치료제 해외직구를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 위고비를 불법 판매하거나 광고하는 행위도 단속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위고비가 국내에 출시된 15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 동안 위법 게시물 12건이 적발 및 조치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위고비를 해외직구나 온라인으로 살 경우 제조·유통 경로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가짜일 가능성도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박경민 기자 me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