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뚜쥬르 빵돌가마마을에 있는 대형 돌가마. 천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일락서산(日落西山)
높이 519m 흑성산 남동쪽 자락 독립기념관에서는 몸가짐이 바르게 된다. 일제(日帝)가 강요한 굴종과 예속에 대한 저항의 기록 앞에서 당연하다. 전시관을 거치며 숙연해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보자. 동양 최대 기와집 ‘겨레의 집’에서 남서쪽으로 걸어간다. 야트막한 언덕으로 올라가는 화강암 계단이 보인다. 층층대를 이룬 돌들이 서로 다르다. 평평한 언덕마루에 올라 열 걸음 정도 내딛는다. 아하!
연면적 3만1309㎡(약 9471평), 반지하 1층, 지상 5층, 구리판 붙인 중앙 콘크리트 돔으로 이뤄진 거대한 건물이 경복궁 근정전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착공 10년 만인 1926년 완공된 뒤 19년간 일제 지배의 총본산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82년까지 중앙청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종합청사 노릇을 하다 철거될 때까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다.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 공원. 중앙에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이 놓여 있다. 주변 돌들도 당시 계단과 기둥 등을 철거하고 남은 것이다. GNC21 제공
공원은 독립기념관 서쪽에 뒀다. 해가 지는 곳이다. 침략의 덧없음과 석양의 쓸쓸함이다. 땅을 5m 판 것은 총독부 건물의 상징인 첨탑을 내려다보게 하려 함이다. 또 5m는 일제가 광화문을 치우고 경복궁 안 홍례문(흥례문)을 없앤 뒤 기초공사를 하기 위해 판 땅의 깊이다. 일제는 압록강 주변 낙엽송 말뚝 9388개를 박아 터를 다졌다. 하지만 해는 서쪽으로 진다. 이제 첨탑이 우리를 올려다본다.
이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해원(解冤)이다. 깊은 상처의 치유다. 그것은 분풀이를 넘어선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천착해온 영국 현대 미술의 총아(寵兒) 데이미언 허스트는 해골에 다이아몬드 8601개를 박아 넣은 작품 ‘For the Love of God’(2007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그리스 신전 같다”고 하는 이 공원은 일제의 죽음에 대한 ‘장식’이다. 35년간 한국인이 받은 억압의 종말에 대한 헌사다. 누군가에게는 잔잔한 감동이다.
● 생명과 치유
이것은 문화예술진흥법 건축물미술작품 제도에 대한 통렬한 야유다. ‘연면적 1만 m² 이상 건물을 지을 때 사업비 최고 0.7%를 미술품 설치 비용으로 써야 한다’는 규정이 구색 맞추기용 작품을 양산하는 현실에 대한 고급스러운 풍자다. 아라리오 조각광장 이야기다.
천안 아라리오 조각광장에 있는 데이미언 허스트 작품 ‘찬가(Hymn)’.
“나사(미국항공우주국·NASA)가 찍은 달 사진을 보면 거기에 깃발이 있다. 미지의 땅인데 깃발을 꽂는 순간 사람들은 그 땅을 안다고 믿기 시작한다. 그런데 깃발을 치워버리면 그건 그냥 어떤 미친 풍경일 뿐이다.”
낯섦은 두려움과 함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내포한다. 허스트가 아들의 2만7000원짜리 장난감 ‘어린 과학자의 해부학 세트’ 인체 해부 인형을 확대해 만든 ‘찬가’는 죽음과 치유를 되새기게 한다. 미술에도 의학처럼 치유 능력이 존재한다고 믿는 허스트는 “예술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더 줄 수 있는데 그건 선물과도 같다”고 했다. 치유는 희망과 연결된다. 이 광장을 만든 김창일 아라리오그룹 회장도 “미술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느티나무 그늘처럼 누구에게나 휴식이 됨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천안 동남구 만남로에서 열린 천안흥타령춤축제 2024 댄스 퍼레이드 장면. 천안시 제공
● 약동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의 버나놀이.
천안 태조산 산림레포츠단지 활강 집코스터.
광덕사 호두나무. 천안 호두과자의 중시조 격인 나무다.
※허스트의 말은 ‘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현대 미술계 악동과의 대면 인터뷰’(마로니에북스)를 참고했다.
천안=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