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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역대 최고 선수 ‘땅콩’ 여오현의 뒤늦은 은퇴식 [발리볼 비키니]

입력 | 2024-10-27 09:00:00


강한 스파이크를 때리는 쪽이 이기는 게 아니다. 볼을 떨어뜨린 쪽이 진다.일본 배구 만화 ‘하이큐!!’에서 네코마고를 이끄는 네코타마 야스후미 감독이 말한 그대로입니다.

하이큐 그러니까 배구(排球)는 공을 코트에 떨어뜨린 팀이 지는 스포츠입니다.

여오현 IBK기업은행 코치가 현대캐피탈 선수 시절 디그 중인 모습.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그리고 한국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경기에서 여오현 IBK기업은행 코치(46)보다 ‘떨어지는 공’을 많이 받아낸 선수는 없습니다.

여 코치는 V리그 정규리그 경기에서 디그 5219개를 남긴 뒤 2023~2024시즌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이 부문 2위(3891개)인 최부식 대한항공 코치(46)와 비교해도 1328개가 많은 기록입니다.
물론 디그에 실패해 상대 팀에 점수를 내줄 때도 있습니다.

디그 실패(998개)를 제외하면 여 코치는 4221점을 막아낸 셈이 됩니다.

삼성화재 선수 시절 여오현 IBK기업은행 코치와 박철우 KBSN 해설위원.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V리그 통산 공격 득점 1위 박철우 KBSN 해설위원(39)은 5603점을 올리는 동안 상대 블로킹에 1252번 당했고 공격 범실도 817번을 남겼습니다.

결국 박 위원이 스파이크를 때려 얻은 점수는 3534점으로 여 코치가 막아낸 점수보다 687점이 적습니다.

스파이크로 팀에 점수를 가장 많이 선물한 선수는 사실 박 위원이 아니라 레오(34·현대캐피탈)입니다.

레오 역시 공격 득점 5261점, 상대 블로킹 680개, 공격 범실 785개로 3835점을 보태 여 코치가 막아낸 점수에 미치지 못합니다.

여오현 IBK기업은행 코치가 현대캐피탈 선수 시절 상대 서브를 받는 장면. 현대캐피탈 제공

여 코치는 통산 서브 리시브 효율도 66.1%로 현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기록을 남겼습니다.

또 여 코치가 출전한 정규리그 625경기에서 팀은 425승(200패)을 거뒀습니다.

이 역시 V리그 역사상 선수 개인 최다승 기록입니다.

유광우(39·대한항공)가 지난 시즌 10회로 기록을 새로 쓰기 전까지 여 코치는 V리그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요컨대 누군가 ‘V리그 남자부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여오현’이라는 세 글자가 정답에 가장 가까웠던 것.

여오현 IBK기업은행 코치가 현대캐피탈 선수 시절 600경기 출전 기념 행사에서 헹가래를 받고 있는 모습.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그러나 직전 소속팀 현대캐피탈이 ‘코칭스태프 + 프런트 개편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 코치는 ’버려진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팬들에게 작별 인사도 못하고 코트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현대캐피탈이 여 코치를 아주 잊은 건 아니었습니다.

현대캐피탈은 27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리는 2024~2025시즌 안방 개막전에서 여 코치의 은퇴식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V리그 역사상 최고 선수에서 초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여 코치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