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 재사용 발사체 기술 초대형 우주선 ‘스타십’ 발사체 엔진 재점화로 낙하속도 줄이고… 로봇팔이 정확하게 붙잡아 착륙 한국, 기술 있지만 상용화는 아직
스타십 아랫부분 로켓인 ‘슈퍼헤비’가 우주에서 지구로 돌아와 수직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슈퍼헤비는 지상에 가까워지면서 엔진을 재점화해 역추진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급격히 줄이고 발사탑에 설치된 젓가락 모양의 두 로봇팔 사이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스페이스X 제공
“엔지니어링 역사책에 기록될 날.”
13일(현지 시간)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가 화성 탐사용으로 개발한 초대형 우주선 스타십(Starship) 발사 후 스타십 하단 대형 발사체 ‘슈퍼헤비’를 다시 발사대로 정확히 회수하자 전문가들은 탄성과 함께 이 같은 평가를 내놨다.
이날 높이 약 70m의 슈퍼헤비가 발사 후 7분 만에 다시 발사대로 돌아와 거대한 젓가락 형태의 로봇팔이 달린 발사대 ‘메카질라’에 살포시 안겨 착륙하는 공상과학(SF)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스페이스X의 주력 발사체 ‘팰컨9’ 회수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거대한 슈퍼헤비를 발사대로 회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기술이다. 여기에는 발사체 엔진 재점화, 역추진, 정밀 제어를 비롯해 발사대 엔지니어링 기술 등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도의 기술력이 집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진 재점화 기술은 한 번 연소한 엔진을 다시 점화해 추력을 자유자재로 확보하는 기술이다. 낙하 중 안정적인 속도와 자세로 떨어지도록 돕는다. 엔진을 수시로 켰다 끌 수 있는 자동차와 달리 발사체의 경우 원격으로 원하는 때에 엔진을 다시 켜는 것은 쉽지 않다.
안정적인 회수에는 스페이스X만의 역추진 기술이 활용됐다. 역추진 기술은 빠르게 이동하는 발사체의 속도를 순식간에 ‘0’에 가깝게 줄여주는 기술이다. 발사체의 무게와 발사체에 가해지는 중력을 동시에 계산하며 적정한 에너지를 가해야 하는 정교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스페이스X는 높이 71m, 지름 9m의 거대한 슈퍼헤비의 엔진 13개에 수평 유지장치인 ‘짐벌’을 달았다. 짐벌은 엔진 13개의 추진력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발사체의 하강 방향과 기립 각도를 조정할 수 있다. 수 km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발사체의 하강 속도와 방향, 각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한 발사체 회수 ‘끝판왕’ 기술로 평가된다.
슈퍼헤비 회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은 ‘젓가락’으로 불린 ‘로봇팔’을 장착한 140m 높이의 발사대 ‘메카질라’다. 일론 머스크는 스타십 발사대를 영화 속 괴물 ‘고질라’에 비유해 메카질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로봇팔을 이용한 발사체 회수 기술을 혁신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엔진 재점화와 역추진으로 서서히 하강할 때 생길 수 있는 오차를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발사된 발사체는 이미 자체 속도가 있다. 생김새가 길쭉해 무게중심이 사소한 변수에도 바뀌기 쉬워 착륙 위치를 제어하기 어렵다. 제어 능력이 뛰어나도 정확히 원하는 위치를 향하도록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다. 스페이스X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착륙 위치를 조절하지만 GPS도 오차가 있다.
로봇팔을 이용하면 오차가 발생해도 슈퍼헤비를 안정적으로 붙잡아 원하는 위치에 착륙시킬 수 있다. 이창진 건국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메카질라의 로봇팔은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든든히 잡아주는 사람 역할”이라면서 “슈퍼헤비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과정은 물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이라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로봇팔이 오차를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팔은 또 슈퍼헤비의 손상을 줄이는 최적의 방법이다. 발사체 재사용을 위한 해상 회수나 지상 착륙 과정에선 발사체 일부가 손상된다.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고 재사용하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미다. 로봇팔을 이용해 손상 없이 발사대로 회수한 발사체는 재사용이 용이해진다. 실제로 머스크는 “메카질라를 활용할 경우 연료를 다시 채워 1시간 만에 재발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회수한 발사체를 이용한 재사용 발사까지 통상 1개월 이상이 소요됐다. 발사대에서 멀리 떨어진 발사체를 회수할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혁신이 이뤄지는 셈이다.
한국은 앞서 발사체 엔진 재점화 기술을 실험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2021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9t급 액체엔진의 재점화에 성공했다. 엔진이 320초간 1차 연소하고 나서 370초 후 다시 점화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지만 실제 상용 발사체에 이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선 후속 연구개발(R&D)이 필요하다. 비행 중 재점화된 엔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냉각 기술 등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부가 기술도 필요하다.
메카질라와 같은 발사대를 만들 수 있는 기본 기술력은 국내에도 있다는 평가다. 다만 상용 재사용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예산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점화 기술의 경우 현재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의 일부로 29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지만 상용 수준으로 기술을 개발하려면 약 2000억 원의 R&D 비용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발사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폭발 등 시행착오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안재명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재사용 발사체에 요구되는 기술 구현 난도가 대부분 높은 만큼 기술 개발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린 동아사이언스 기자 rini113@donga.com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