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0월 23일 오전 서울 한 호텔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0월 21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제안했던 ‘2차 당 대표 회담’에 선뜻 응한 것에 대해, 이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의 ‘면담’이 예고돼 있던 21일 오전 당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한동훈 대표님, 면담 잘하시고 좋은 성과 내시고, 또 기회가 되시면 야당 대표와도 한번 만나시길 기대합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국민의힘 박정하 당 대표 비서실장은 약 3시간 만인 이날 오후 “이 대표가 한 대표에게 회담을 제의했고, 한 대표도 민생 정치를 위해 흔쾌히 응하기로 했다”고 화답하더군요.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면담이 시작하기 4시간 전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운데)와 면담을 하고 있다. 한 대표 왼쪽은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이날 자리 배치와 테이블 모양, 사진 구도 등을 두고 ‘한동훈 홀대론’이 일자 대통령실은 “대화하는 데 테이블 모양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며 “(사진 구도상) 기획이나 의도는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 제공
점입가경으로 흐르는 윤-한 대결 탓에 야권에서도 황당한 장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컨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공개적으로 “한동훈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이랄까요. 조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용산 회동 이후 한 대표가 모욕을 느끼고 뭔가 결심을 한 듯하다. (한 대표는) 저 선을 넘는 무리의 공범 혹은 부역자가 되느냐 본인의 말대로 국민과 나라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되느냐, 갈림길에 서 있다”며 “부디 좋은 선택을 하기를 조국혁신당이 응원하겠다”고 했죠. 발언 마지막엔 주먹을 불끈 쥐며 “한동훈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살다가 조국이 한동훈을 응원하는 별 희한한 장면을 다 본다 싶었습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10월 2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한동훈 파이팅”이라고 외친 모습. 유튜브 캡처
한 대표가 추진하겠다는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어디 한번 해 보시든가” 라며 일단 관망하는 스탠스입니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수석비서관 이상 대통령실 공무원을 감찰하는 자리죠.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됐지만,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초대 감찰관이 사퇴한 뒤 8년째 공석입니다. 최근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대통령실과 친윤(친윤석열)계는 “특별감찰관은 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연계해 풀어야 할 문제”라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냈죠. 친윤계인 추경호 원내대표도 “국회 운영과 관련된 원내 사안”이라고 곧장 선을 그었고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참석했다. 최근 한 대표가 제안한 특별감찰관 임명에 대해 추 원내대표는 “원내 사안”이라며 선을 그으며 정면충돌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0월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등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대표는 11월 15일과 25일 각각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와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은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시·도당위원장, 지역위원장, 지역위원회 당원을 ‘참석 대상’으로 공지하고, 시‧도당별로 참석자 규모를 10월 30일까지 미리 제출하라고 하는 등 사실상의 동원령에 나섰습니다. 이미 “(겨울 장외투쟁을 위해) 롱패딩을 준비하겠다. 김건희 정권에 대한 성난 민심을 확인시켜 드리겠다”라고까지 했으니 이번 집회가 일회성으로 끝나진 않을 듯합니다.
10월 26일 서울 서초역 인근에서 열린 조국혁신당의 ‘검찰해체·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언대회’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윤석열 탄핵’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장외에서 여론전이 펼쳐지는 동안, 국회에선 김건희 특검법이 다시 본회의에 오릅니다. 이번이 세 번째죠. 민주당은 11월 14일로 예정된 본회의에 특검법을 올려 강행 처리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날 김건희 특검법 외에 국정조사, 그리고 여당의 상설특검 후보 추천권을 배제하는 국회 규칙 개정안도 상정시킨다는 계획입니다. 국민의힘은 과연 이에 맞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할까요. 국회 관계자도 “국민의힘 내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한 반대토론을 신청할 의원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라더군요.
공교롭게도 14일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 하루 전날이자, 이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가 진행되는 날입니다. 검찰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와 관련해 김 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구형했죠.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배우자들의 혐의를 둘러싼 ‘빅데이’가 되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10월 17일 국회 의안과에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뉴시스
제가 국회를 처음 출입했을 때만 해도 ‘진보는 자기들끼리 싸우다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해서 망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여겨졌었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어느덧 그것도 다 옛말이 돼 버렸네요.한 대표가 이번에 ‘배신자’ 프레임을 극복하고 민주당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갈지, 그리고 갈 데까지 가버린 여당 내홍을 수습해낼 지가 향후 그의 리더십을 가늠할 척도가 될 것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