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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칼럼]임기 반환점에 지지율 20%, ‘비극의 싹’ 직시해야

입력 | 2024-10-27 23:21:00

보수 지지층도 尹에 대한 기대 거의 접은 듯
국민이 불러냈다더니 국민 목소리 외면한 탓
김 여사 문제 해소는 루소의 ‘일반 의지’ 수준
통절한 반성문 쓰고 ‘기본 책무’에 충실해야



정용관 논설실장


세계적 전기(傳記)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통찰에 따르면 비극적 인물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나폴레옹 같은 비범한 운명을 좇는 비범한 인물이다. 이들은 타고난 영웅적 본성에 따라 불의 시련까지도 기꺼이 감당한다. 반면 평범하거나 나약한 천성의 인물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도 비극은 발생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다.

단적으로 김 여사는 비범한 인물도, 평범하거나 나약한 천성의 인물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옥죄거나 간섭하는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갈등을 일으키는 독특한 제3의 유형인 듯하다.

봉건제도 아닌 민주공화정에서 아내 이상의 역할을 추구하는 대통령 부인은 필연적으로 비극적 요소를 안고 있다. 그 결과가 국정 에너지 고갈로 이어지고 있음은 잇단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0%로 6주 만에 다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보수의 심장’이라고 하는 대구·경북(TK)에서도 30% 선이 무너졌다. 보수층에서도 국정 수행 긍정 평가가 국민의힘 지지율을 밑돈 지 오래다.

부정 평가 이유로 ‘김 여사 문제’가 처음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도 의미심장하다. 일주일 전 조사에선 김 여사 특검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63%, 김 여사가 공개 활동을 줄여야 한다는 응답은 67%에 달하기도 했다. 이쯤이면 여론의 판단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김 여사 문제에 대한 국민 여론은 좀 거창하게 말하면 장자크 루소의 ‘일반 의지(general will)’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용산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부터 “(특검은) 의원들이 야당 편에 서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할 테면 해보라는 건지 될 대로 되라는 건지 진의를 알 수 없을 정도다. 압권은 “업보로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는 발언이다. 뭐가 업보라는 건지, 누가 돌을 던진다는 건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좌고우면하며 여론을 살펴도 시원찮을 판에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니, 대체 무슨 소리인지….

사실 독대 요구나 면담 의제를 미리 흘리며 여론 정치를 하는 듯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정치 스타일이 마뜩하진 않다. 부적절한 활동 자제 요구도 아니고 아예 활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게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한 대표의 요구가 국민 지지를 얻는 이유는 김 여사가 그간 쌓아 온 국정 개입 그림자가 그만큼 짙기 때문이다. 바로 그게 업보라면 업보일 것이다.

곧 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이다. 지난 2년 반의 성적은 20% 지지율이 보여주듯 낙제점이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민이 불러낸 대통령’이라면서 국민 목소리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돌 던지면 맞고 간다”는 말 자체엔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김 여사 라인 정리하랬더니 구체적으로 잘못을 적어내라고 하고, 여러 시중 의혹에 대해선 혐의가 입증된 게 없다는 식이다. 법이 만능도 아니고 권력의 눈치를 본다는 건 일반 국민도 안다. 그런데도 형식적 법논리만 따질 뿐 겸허하게 머리를 숙이는 태도는 볼 수 없다.

아직 2년 반이나 남았는데, 뾰족한 국정 반전책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대통령이 바뀌어야 하는데 다들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심기일전과 김 여사 라인 정리를 포함한 과감한 인적 쇄신을 거듭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임기 후반부엔 무슨 엄청난 성과를 내려 일을 벌이기보다는 ‘기본 역할(minimum requirement)’에 보다 충실하길 바란다. 급변하는 경제 안보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는 것 자체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 대표의 정치 역량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새로운 보수의 가치, 보수의 플랫폼을 만들어 낼지에 그의 정치적 미래도 달려 있다. 위기에 놓일 때마다 외부에서 사람을 찾는 땜빵식 해법으론 보수의 미래가 없다. 이젠 당을 새롭게 정비하고 훼손된 보수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그 안에서 인물을 키우는 길을 가야 한다. 용산이든 여당이든 통절한 반성문이 절실한 때다. 그런데 윤-한은 서로 눈앞의 싸움에만 연연하니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는 ‘비극의 싹’은 점점 커져만 가는 듯하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