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자민당 단독과반 붕괴”] ‘파벌 비자금 스캔들’ 최대 패인… 고물가-경기침체에 불만 커져 ‘절대 1강’ 자민당에 등 돌려… 이시바, 리더십 약화 불가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오른쪽)와 스즈키 슌이치 자민당 총무회장이 27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당선이 확정된 총선 후보자 이름 위에 꽃 장식을 붙이고 있다. NHK방송 등 주요 언론사 출구조사 결과 자민당은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최소 의석 확보에 그치며 총선에서 패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사히신문 제공
27일 치러진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총선)에서 일본 유권자들은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총리는 전날 도쿄 마지막 유세에서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는 없다. 일본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정당은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뿐”이라고 호소했지만,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터진 자민당 파벌 비자금 스캔들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사망 이후 불거져 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착 의혹 등으로 부패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은 ‘절대 1강’ 자민당에 등을 돌렸다.
자민당이 15년 만에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번 총선에서 사실상 패배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파벌 비자금 스캔들’이 꼽힌다.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던 보수 강경 아베파 등이 후원회에서 걷은 정치자금 일부를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뒷돈으로 빼돌려 소속 의원들에게 지급한 사실이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자민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커졌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총리는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며 연임을 포기했다.
이시바 총리는 새 내각 출범 후 국민적 기대감이 클 때 국회를 해산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오랜 자민당 전략을 따라 취임 8일 만에 중의원을 전격 해산하고 조기 총선에 나섰다. 하지만 승부수는 먹히지 않았다. 비자금에 연루된 의원 12명을 공천에서 배제했지만, 출구조사(교도통신)에서 투표자 74%가 “비자금 문제를 고려해 투표했다”고 응답하며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선거 막판 터져 나온 ‘2000만 엔(약 1억8000만 원) 교부금’ 문제는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자민당 본부가 비자금 문제로 공천이 배제된 후보의 소속 당 지부에 국민 세금인 정당 교부금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자 “허울뿐인 공천 배제”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시바 총리는 개표 중 기자회견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매우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향후 행보에 대해선 “(거취에 대한) 그런 말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사임론을 부정했다.
주요 언론사의 출구조사 결과 자민당 단독 과반은 물론이고, 자민-공명 연립여당 과반도 위험해지면서 일본 정국은 한층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크다. 절반을 훌쩍 웃도는 의석을 토대로 정부와 여당 뜻대로 국정을 운영하고 법안을 통과시켜 왔지만, 당장 11월 초 국회에서 열릴 총리 재지명부터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정당도 확실한 장악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자민당 내, 야당들 간에 이합집산이 수시로 벌어질 수 있다.
자민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고 집권하지 못했던 1990년대 중반, 2000년대 후반에는 거의 매년 내각 총사퇴, 총리 교체가 반복됐던 전례가 있다.
교도통신은 “자민당 단독 과반 확보 실패로 이시바 총리의 구심력 약화는 불가피해졌다”며 “공천 배제를 당한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당내에서 이시바 총리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시라토시 히로시(白鳥浩) 호세이대 교수(정치학)는 “자민당은 공명당과 함께 과반 확보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자민당 단독 과반 여부가 사실상의 승패 기준이었다”며 “자민당이 200석 확보에도 실패하면 이시바 총리가 사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