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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펜져스’ 전신 ‘F4’ 주역 원우영 “낮에는 펜싱 칼, 밤에는 요리 칼 잡아”[이헌재의 인생홈런]

입력 | 2024-10-28 12:00:00


원우영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 코치가 아이들을 위해 요리는 하고 있다. 칼을 잡은 손이 익숙하다. 원우영 제공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은 ‘어펜져스’(펜싱+어벤져스)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훈훈한 외모에 좋은 체격, 그리고 뛰어난 실력까지 갖추고 있어서다.

어펜져스는 올해 파리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2개를 따내며 세계 최강임을 재확인했다. 오상욱이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고, 4명(오상욱 구본길 박상원 도경동)이 출전한 단체전에서는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다. 도경동이 2관왕에 오른 오상욱을 향해 “우리는 지금 오상욱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자 오상욱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어펜저스에 앞서 F4의 시대가 있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F4(왼쪽부터 김정환 오은석 원우영 구본길)의 모습. 동아일보 DB

단체전 우승이 확정된 순간 어펜져스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다만 이들을 지도한 원우영 남자 펜싱 사브르 코치(42)만은 옆에서 ‘폭풍 눈물’을 쏟았다. 한 번 터진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그는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원 코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면서도 “지난 3년간 힘들고 고생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021년 도쿄 올림픽 때도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당시 금메달 멤버 중 김정환과 김준호가 빠지고 박상원과 도경동이 자리를 대신 채웠다. 원 코치는 “멤버 두 명이 바뀌면서 주변에서 부정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선수들도 위축되면서 분위기가 많이 가라 앉았다”며 “티를 내지 않으려 오히려 더 강하게 맞섰다. 고맙게도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고 말했다.


원우영 코치(왼쪽)과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오상욱. 올림픽공동취재단

파리 올림픽에선 조연이었지만 원 코치는 한국 남자 사브르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 선수 출신이다.

한국 펜싱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영호가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다가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다. 원 코치는 런던 올림픽에서 오은석 김정환 구본길과 함께 누구도 예상못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에도 네 선수 모두 준수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팬들은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네 명의 남자 주인공을 빗대 ‘F4(Flower 4)’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어펜져스에 앞서 F4가 있었던 것. F4 중에서도 주인공이었던 원 코치는 “사실 당시 외모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부담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며 웃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브르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유럽세가 워낙 강해 다른 대륙 국가들은 좀처럼 파고들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원 코치는 “예선 탈락이 기본이었다. 워낙 기술과 체력 차이가 많이 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캠코더로 상위권 선수들의 영상을 찍어 따라해 보는 것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심판 판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았다. 찰나의 순간에 따라 승부가 바뀌곤 하는 사브르 종목 특성상 심판 판정이 중요한데 유럽 선수들은 피스트 밖에서는 심판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반면 인지도가 없고, 경기에도 잘 나가지 못했던 한국 선수들은 억울한 판정을 당해도 속으로 삼키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챌린지(비디오 판도) 제도도 없었다.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뒤 원우영 코치를 헹가레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때 SK텔레콤이 구세주로 나섰다. 2003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은 SK텔레콤은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해외 훈련과 국제대회 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등 대회가 열리는 곳이나 훈련 시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다. 원 코치는 “유럽 선수들에게도 고마운 게 선입견 없이 ‘함께 훈련하자’며 손을 내밀어줬다. 유럽도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 특색이 있다. 곳곳을 다니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아낌없이 흡수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진 지 3년 만인 2006년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원 코치는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럽 선수들이 독식하던 남자 사브르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시상대에 선 것이다. 201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전 정상에 올랐다. 역시 아시아 선수 최초의 쾌거였다. 당시 그는 파리 그랑팔레 금메달을 땄는데 올해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사브르 대표팀은 역사적인 그랑팔레에서 금메달 2개를 합작했다. 그는 “아마추어 종목에서 투자와 성과는 비례한다. SK텔레콤의 지원이 없었으면 F4도, 어펜져스도, 한국 펜싱의 전성기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우영 코치는 요즘 모처럼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아내 김규리 씨, 시헌 군, 채하 양, 원우영. 원우영 제공

원 코치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로 펜싱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을 달성한 후 2015년 은퇴했다. 이후 소속팀 서울교통공사에서 코치를 맡으며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는 TV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다 2021년 다시 코치가 돼 대표팀으로 복귀했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을 뿌리치고 다시 선수촌으로 돌아온 그는 “대표팀 코치는 성적이 안 나면 바로 잘리는 자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잘해 낼 자신이 있었다”며 “내가 선수 때 쌓은 기술과 철학을 후배들에게 직접 전달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코치’ 원우영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칼을 사용해야 했다. 낮에는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펜싱 칼을 잡고, 저녁에는 요리용 주방 칼을 들었다.

월드컵과 그랑프리 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에 나갈 때 선수들은 한국 음식을 찾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펜싱 경기는 유럽에서 열리기 때문에 경기를 마친 뒤 한식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원 코치가 직접 요리사로 나선 것이다. 원 코치는 “외국에 나가면 선수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게 김치다. 그래서 김치를 잔뜩 싸 들고 가서 김치찌개를 만들어주곤 한다”며 “고추장과 조미료 등을 고루 챙겨가 닭도리탕도 종종 끓인다. 유럽 현지에서도 닭은 구하기가 쉬워 얼큰한 닭도리탕으로 한식의 그리움을 채우곤 한다”고 말했다.


원우영 남자 펜상 사브르 코치(앞)가 2016년 리우 올림픽 해설 때 만난 정우영 SBS스포츠 캐스터와 포즈를 취했다. 원우영 인스타그램

2021년 대표팀 코치 취임 후 올해 파리 올림픽까지 3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요즘 모처럼 ‘코치’가 아닌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첫째와 세 살 난 둘째 아이를 돌보는 게 하루 일과다. 아이들 학원과 어린이집 라이딩부터 청소, 설거지까지 모두 담당한다. 모처럼 가족 여행도 다녀왔다.

대표팀에서 요리사로 활약했던 그는 아이들에게도 종종 식사를 만들어준다. 원 코치는 “흔히 펜싱 경기를 원 포인트 싸움이라고 한다.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모처럼 육아를 해보니 육아 역시 펜싱 못지않은 원 포인트 싸움이라는 걸 매일 절감하고 있다”며 웃었다.

하지만 얼마 있으면 그는 다시 펜싱의 원 포인트 싸움으로 돌아가야 한다. 11월 재소집되는 국가대표 선수단 일정에 맞춰 다시 선수들을 지도하게 된다.

은퇴한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그는 따로 건강을 관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운동량이 많다. 그는 선수들을 1대 1일 레슨 형식으로 지도하는데 하루에 4~6명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한다. 선수당 1시간 가량 훈련을 한다고 가정하면 4~6시간 동안 쉼 없이 칼을 주고 받는 셈이다. 그는 “세계적인 선수들이니만큼 움직임과 스피드가 너무 좋다. 하루 지도를 하고 나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질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선수 발목 강화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종목 특성상 펜싱 선수들이 발목을 접질리기 십상인데 그 역시 선수 생활 내내 발목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작은 돌덩이를 밟으면 발목이 휙휙 돌아가곤 한다. 그는 “발목 인대 주변 강화에 가장 좋은 건 수영이다. 특히 수영을 할 때 발차기를 많이 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며 “평소 쉴 때도 가동 범위가 나오는 데까지 발목을 꺾어주는 동작을 한다”고 말했다.


원우영 남자 펜싱 사브르 코치가 손가락으로 칼 모양을 만들어보이고 있다. 이헌재 기자

선수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지도자로 제자들의 올림픽 금메달을 도운 그의 목표는 한국 남자 사브르가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는 게 힘을 보태는 것이다. 그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피과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까지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그때가 되면 나도 50살 언저리가 된다. 앞으로 두 번의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후 다음 인생 목표를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최고의 장점은 ‘팀워크’라고 했다. 그는 “특히 단체전에서는 팀원들 간의 신뢰가 핵심이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다. 파리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도 그렇게 나왔다”고 했다.

사브르 대표팀의 팀워크의 단적인 예는 결혼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승무원 출신인 김규리 씨와 2015년 결혼했다. 펜싱 선수-승무원 1호 커플이었다. 이후 김준호, 구본길, 김정환이 차례대로 결혼했는데 신부들은 모두 승무원 출신이었다. 원 코치는 “서로 소개를 해주거나 한 건 아닌데 우연히 그렇게 됐다. 모두 이상형을 보는 눈이 비슷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