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의 가족’. 가족은 위선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보통의 가족이다. 하이브미디어코프·마인드마크 제공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요즘 이혼소송 중인 유명 아나운서 부부가 급기야 쌍방 상간 소동까지 가는 막장 드라마가 펼쳐진 배경에는 의심이란 불치병이 있어요. 사실 의심이란 불안, 시기, 질투, 박탈감, 열등감, 무력감이 만들어내는 가장 손쉽고 유혹적인 탈출구죠. TV 사극 ‘태조 왕건’의 궁예를 보세요. 권력 유지를 향한 불안감에 시달리던 궁예가 선택한 관심법(觀心法)이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의심법이 아니었겠어요?
이런 뜻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더 좋았을 TV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가족 공동체가 의심에 의해 유린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잔인하리만큼 사려 깊게 묘사하는 가족 누아르예요. 아버지(한석규)와 어머니(오연수)는 딸(채원빈)이 사이코패스라 의심해요. 의심은 확신을 낳고, 확신은 행동을 낳고, 진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죠. 아마도 제목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말하려는 ‘배신자’는 딸이 아니라 부모가 딸에게 품었던 의심 그 자체인 듯해요. 사랑은 말하긴 쉽지만 행하긴 어렵고, 의심은 입 밖에 내긴 두렵지만 맘에 품긴 쉽다는 게 메시지니까요.
시골 사는 노부부가 자식들 얼굴 보려고 산 넘고 물 건너 도쿄로 와요. 의사 아들과 미용실 운영하는 딸은 바쁘단 핑계로 돈 안 되는 부모를 피해요. 손자 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는 바람에 잠자리가 불편해졌다고 난리죠. 2차 대전에 군인으로 참전했다 실종된 둘째 아들의 아내인 며느리만이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대접해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이 명작은 세계대전 패망 후 전통 가치가 무너지고 해체되는 일본의 가족주의를 보여줘요. 유일하게 노부부를 성심껏 대하는 며느리에게 노부부가 “죽은 남편에 연연하지 말고 꼭 재가하거라” 하고 신신당부하는 모습을 통해 가족은 더 이상 핏줄만으로 연결된 공동체가 아님을 암시하기도 하죠.
[3] 이런 맥락에서 16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은 작금의 가족 공동체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내요. TV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더 좋았을 이 영화에서, 양심적인 소아과 의사인 남편(장동건)과 치매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사회봉사활동에도 열심인 아내(김희애)는 주변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부부예요. 하지만 아들이 노숙자를 때려죽였단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180도 표변하여 자식의 범죄를 은폐하려 들지요. 빈곤에 배곯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상을 보곤 눈물을 질질 흘리던 김희애는 다음 장면에선 자신이 몸담은 사회공헌단체 명의의 봉사 표창장을 위조해 고등학생 조카에게 아무렇지 않게 건네죠. 남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미친 수준으로 관대한 게 아무리 요즘 정치권의 핫 트렌드라지만, 겉으론 완벽해 보이는 가족 안에 숨은 위선과 균열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은 환멸로 가득해요. 번지르르해 보이는 중산층 집안의 모범 가장이 속으론 딸의 친구를 탐한다는, 더럽고 우아한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뷰티’(2000년)를 떠오르게도 하죠.
어쩌면 ‘보통의 가족’이란 제목부터가 가족의 종말을 지독히 장난스럽게 암시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요. 가족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겠는 이 시대에 보통의 가족이라니, 얼마나 불온하고 도발적이고 짜증 나느냔 말이죠.
[4] 가족이 소멸 위기일수록 가족에 대한 판타지는 반비례로 강해져요. 1일 개봉한 ‘대도시의 사랑법’만 봐도 그래요. 지나치게 자유분방해서 ‘미친 ×’ 소리를 듣는 여자(김고은)와 성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는 게이(노상현)가 마음속 허기를 서로 절실하게 보듬으면서 대안가족을 이룬다는 내용의 이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말해요. “난 보고 싶단 말이 사랑한단 말보다 더 진짜 같아. 사랑은 추상적이고 어려운데 ‘보고 싶다’는 참 명확해.” 그래요. 보고 싶은 게 사랑보다 진짜예요. 보고 싶어야 진짜 진짜 가족이니까요. 진짜는 절대로 죽지 않아요.
이승재 영화평론가·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