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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정은]北인권 문제까지 金 여사와 엮이게 해서야

입력 | 2024-10-28 23:18:00

이정은 부국장


러시아에 붙잡혀 있던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가 8월 풀려나 다시 미국 땅을 밟는 장면은 부럽기 그지없었다. 취재 도중 간첩 혐의로 붙잡힌 에번 게르시코비치 기자가 투옥된 지 약 500일 만이었다. 고문과 가혹한 환경으로 악명 높은 레포르토보 구치소는 비슷한 이유로 체포된 한국인 백모 선교사가 수감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北인권재단-특별감찰관 무리한 연계

미국은 그를 비롯해 러시아에 억류된 자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1년 넘게 치밀한 물밑 외교전을 펼쳤다. 러시아를 상대로 쓸 ‘맞교환 카드’를 확보하기 위해 제3국인 유럽의 동맹국들을 끌어들였다. 특히 독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송환을 원하는 러시아 암살범이 구속돼 있었다. 자국 땅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풀어줄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티는 독일을 미국은 집요하게 설득했다. 그렇게 극적으로 돌아온 미국인 4명을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밤중 공항에 직접 나와 맞이했다.

활짝 웃는 석방자들을 보면서 북한에 갇혀 있는 김정욱 선교사가 떠올랐다. 2013년 평양에서 체포된 지 벌써 4000일이 넘었다. 무기노동 교화형을 선고받은 뒤 생사조차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다. 북한이 남한 사람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할 뿐이다. 김 선교사를 포함해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은 6명이다.

북한인권 문제는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고문받거나 처형당하고,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등에서는 ‘북한인권’을 북한이 가해자이거나 북한에 연루된 인권 사건들을 모두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정의한다. 억류자와 납북자, 국군포로를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들도 엮여 있는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나 북한인권을 중시한다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실질적 개선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통령실이 최근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과 연계시킨 것 또한 그다지 진정성 있는 조치로 보이지 않는다. 상관관계가 없는 두 사안은 여야가 정치적으로 엮으면서 벌써 8년째 공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도 아닌 여당 대표가 연계를 풀자고 나섰다. 용산이 이를 북한인권재단 이사 문제로 받아친 것은 이렇게라도 재단을 굴러가게 하겠다는 절박함이라기보다는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다루게 될 특별감찰관 선임을 어렵게 만들려는 계산법이 앞섰기 때문은 아닌가.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선임 과정도 시끄럽다. ‘김정은 금고지기’로 불리는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관리였던 이정호 씨의 딸 이서현 씨가 단수 추천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탈북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북한 정권에서 특혜를 누렸고, 한국으로 왔으나 다시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해 떠난 인사의 자녀가 북한인권대사를 맡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서현 씨가 김 여사의 방미 기간에 일정 진행을 도왔던 것도 논란을 키우는 분위기다. 수십 년간 활동해온 북한인권 전문가들을 밀어내고 30대 초반의 탈북민이 유력 후보로 검토된다니 ‘여사 라인’이 배경이 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법도 하다.

정쟁화할수록 내부 갈등만 키울 뿐


이런 논란들은 결과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정쟁의 늪으로 밀어넣기만 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해결은커녕 우리 안의 갈등을 부추겨 지금까지의 노력마저 퇴보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북한에서는 10대 학생들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가 공개 처벌됐다는 증언이 나오고, 북측 하늘로 띄우는 대북 전단이 많아지는 만큼 이를 접하는 주민들이 통제, 박해받는 정황들도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시끄러운 정치적 이슈와 엮어 시간을 흘려보낼 때가 아니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