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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찾는 젊은 분들 늘어 뿌듯해요” 

입력 | 2024-10-30 03:00:00



《즐거운 술상에서 만난 ‘흑백요리사’ 이모카세 1호 김미령 셰프.
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10여 가지의 나물은 한복을 정갈하게 입은 김미령 셰프와 닮아 있었다.》

“새우 좋아하는 사람!”음식을 준비하던 ‘이모카세 1호’ 김미령 셰프가 말했다. 한 손님이 손을 번쩍 들자 김미령 셰프가 큼직한 새우 2개를 놓아준다. 또 토실토실한 낙지를 먹기 좋게 자른 후 삶은 배추에 싸서 손님들 입에 넣어준다. 그러고는 “내가 비비면 때깔이 달라진다”며 밥과 온갖 나물을 쓱쓱 비벼준다. 끝없이 나오는 코스에 “이제 더 이상 못 먹어”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때쯤 떡볶이와 토스트가 등장한다. 김미령 셰프는 급기야 “못 먹는 사람 싸준다”며 포일에 토스트를 포장해준다. 푸짐한 인심에 내일까지 배가 든든한 이곳, 김미령 셰프가 운영하는 ‘즐거운 술상’이다.

김미령 셰프는 단정한 쪽머리에 한복 차림으로 해산물을 삶아내고 두부를 부치고 20인분의 국을 휙휙 젓는다. 자신의 손길이 닿은 요리만을 대접하고 싶어 오로지 하루 20명의 손님만 받는다는 김미령 셰프. 20평 남짓한 공간에서 그 대쪽 같은 신념이 느껴졌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매력도 그 때문이었다. 

김미령 셰프는 요리로 인생을 말한다. ‘흑백요리사’ 인생 요리 미션에 내놓았던 안동국시는 그가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된 ‘설움’이 묻어 있는 메뉴다. 하지만 안동국시는 오히려 그의 삶을 지탱해준 원동력이 됐다. 즐거운 술상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김미령 셰프를 만났다.




상금도 모르고 출연한 ‘흑백요리사’ Top 8이 되기까지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에 섭외가 왔을 때는 도망 다녔어요. 근데 작가님들이 끈질기게 찾아와서 설득하는 거예요. 끝까지 못 하겠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제가 경동시장의 안동집 손칼국시도 영업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해서 결국 나가게 됐죠. 재래시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 항상 안타까웠거든요. 그래서 재래시장을 홍보하고 싶었어요.”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우선 촬영장에 갔을 때 규모가 너무 커서 놀랐어요. 그 많은 셰프를 한자리에 모이게 만들었다는 것도 인상 깊었죠. 매 미션도 기억에 남아요. 사전에 얘기를 듣고 가는 게 아니라 촬영 당일 현장에 들어가서야 미션을 알게 됐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백수저와 흑수저를 갈라서 했던 팀 미션이에요. 그 미션에서는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잊었던 것 같아요. 그냥 음식을 만드는 순간이 너무 즐거웠어요. 제가 모르는 분야의 다른 유명한 셰프님들과 한자리에서 음식을 같이 만들었다는 것, 그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영광이었고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인생 요리 미션도 인상 깊었어요.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집이 힘들어지면서 어머니가 국수 장사를 하셨어요. 저는 엄마가 하시던 국수 장사를 2대째 이어받아서 하고 있고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 엄마가 안동국시 해주면 싫어서 안 먹었거든요. 그런데 그걸로 제가 생계를 유지하고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도 키우고 있죠. 저는 그런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흑백요리사’에서 인생 요리 미션을 받았을 때 당연히 안동국시가 제 ‘인생 요리’라고 생각했어요.” 

안동국시와는 애증의 관계네요.

“재래시장의 주방은 굉장히 협소하고 여건이 안 좋아요. 그런 곳에서 중학교 때부터 설거지하고 20대 후반부터 정식 직원으로 일했어요. 앞치마 집어던지고 나가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었죠. ‘내가 배운 게 없어서 이러고 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청춘을 재래시장 지하에서 이렇게 보내야 하나’ 싶어서 우울할 때도 있었고요. 안동국시랑은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죠. 과거에는 애증이었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존재예요. 아마 죽을 때까지 안동국시를 만들지 않을까요?”

레스토랑 미션 때 나온 구운 김이 엄청나게 화제가 됐어요. 김구이 비법은 무엇인가요.

레스토랑 미션에서 선보였던 김. 비법은 ‘정성’이다.  사진 박해윤 기자

“특별한 레시피가 없어요. 참기름과 들기름 50:50 그리고 맛소금 살짝 뿌려 적당한 온도에서 잘 구워내면 되는 건데요. 김은 기다림이에요. 불이 너무 세거나 약해도 안 되거든요. 김을 10장 정도 굽다 보면 프라이팬 온도가 살짝 떨어져요. 그럴 땐 약간 불을 높여서 다시 온도를 유지하죠. 온도 조절이 비법이라면 비법이에요. 김은 정성인 것 같아요.” 

마지막에 안타깝게 탈락했는데 안타까움은 었나요.

“저는 탈락해서 너무 좋았어요(하하). 제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요. 오히려 쟁쟁한 실력을 갖춘 다른 참가자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반성도 많이 했어요. 다양한 셰프님과 함께 요리하면서 음식 만드는 과정을 보고 많이 배웠거든요. 그래서 주방에 들어설 때 마음가짐을 새로 하게 됐죠. ‘내가 모르는 조리 도구가 많구나’ ‘내가 너무 내 주방에서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삶아드린 국수를 드시고 거기에 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가신 손님들한테 새삼 죄송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현대적인 주방 기구를 갖춰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흑백요리사’에 출연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예전보다 예약 전화가 많아졌어요. 하루에 몇천 통씩 오거든요. 전화에 일일이 응대를 못 해드리는 것이  속상해서 다른 예약 방법을 좀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리고 길을 지나가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것, 그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즐거운 술상에서는 살아 있는 식재료만 취급하거든요. 그래서 새벽 4시 30분에 물건을 발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저는 철칙이 매일 30분씩 목욕을 하고 출근하는 건데요. 마음가짐을 새로 하는 저만의 과정이에요. 목욕하면서 ‘어제는 이런 잘못을 했는데 오늘은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다짐해요. 그리고 경동시장에 있는 안동집 손칼국시에 출근해서 점심 장사를 하고요. 오후 2~3시 정도면 창동 즐거운 술상으로 넘어와서 5시부터 8시까지 일하고 있어요.” 

항상 쪽 진 머리와 한복 차림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요.

김미령 셰프는 손님과 음식으로 소통하기 위해 오픈 주방을 고집한다. 사진 박해윤 기자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손님을 대하려고 해요. 또 재래시장에 가게가 있으니까 인식에 대한 틀을 깨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많은 분이 재래시장은 불친절하고 위생적으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저는 ‘재래시장이 예전하고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드리고 싶어요.”  

재래시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신 것 같아요.

“제가 아이가 둘이에요.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 5개월 정도 일을 쉬었는데요. 모유수유를 할 때 조리사 자격증을 따러 다녔어요. 재래시장에서 국수 장사를 하더라도 오시는 손님들한테 뭔가를 갖추고 음식을 내놓는 것과 그렇지 않고 내놓는 거는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조리사 자격증을 한식, 양식, 일식 이렇게 준비해서 가게에 걸어놓고 오시는 손님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있습니다.” 

경동시장에 사람이 많이 늘어 행복하시겠어요.

“요즘 젊은 분들이 많이 찾아와주셔서 정말 행복해요. 넷플릭스 기자회견에서 ‘요즘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그 어떤 것보다도 ‘흑백요리사’ 덕분에 젊은 분들이 재래시장을 많이 와줘서 너무 뿌듯하고 행복하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운영하는 식당을 프랜차이즈화할 생각은 없나요.

“즐거운 술상도, 안동집 손칼국시도 프랜차이즈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안동집 손칼국시 체인을 열자는 제안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도 체인점화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예요. 저와 남편은 이미 합의를 봤어요. ‘주방에서 온기 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낼 수 있을 때까지만 장사를 하자’고요. 즐거운 술상도 마찬가지예요. 저 대신 다른 분들이 음식을 해서 손님을 더 받으면 그건 즐거운 술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즐거운 술상은 즐거운 술상답게 운영할 생각입니다.”




사람 냄새 나는 그곳, 즐거운 술상
즐거운 술상을 개업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동네에서 술집을 가려고 하면, 요즘 술집들은 다 브랜드화해서 정량화된 음식을 팔잖아요. 한국인의 정서는 정인데 그런 정이 느껴지는 식당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게 아쉬웠죠. 그냥 보통의 시민들이 따뜻한 음식에다 소주 한잔 먹을 수 있는,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곳을 찾았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런 곳을 찾아 헤매지만 말고 내가 한번 차려보는 건 어떨까 싶었어요.” 

손님과 주방에서 교류하는 모습이 인상 깊은데요. 오픈 주방을 고집하시는 이유는요.

“손님 처지에서 본인이 먹는 음식이 어떻게 조리되고 만들어지는지 볼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만약 오늘 메뉴가 수육이라면 수육에 어울리는 김치를 드릴 수 있잖아요. 즐거운 술상의 단골손님이라면 제가 그분의 입맛을 어느 정도 알거든요. 그래서 저번에 그 손님이 김치를 잘 드셨다는 생각이 나면 김치를 내놓기도 해요. 그렇게 그때그때 손님에 맞춰서 가장 만족할 만한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게 오픈 주방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모카세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단 20명의 손님만 받는 즐거운 술상의 메뉴들. 사진 박해윤 기자

“사실 이모카세라는 호칭을 별로 안 좋아해요. 예전에는 우리 가게 단골손님들이 저를 누나 혹은 언니라고 불렀는데 이모카세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제가 이모가 돼버렸어요(웃음).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아서 싫더라고요.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해요. 그 말 덕분에 ‘이모카세’라는 문화가 유행이 됐으니까요.” 

가을철 술안주로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다면요.

“해산물로는 꽃게와 대하가 굉장히 좋고요. 날이 조금 추워지면 생선구이, 특히 고등어구이가 좋죠.  날이 추워지면 제주 무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무를 넣고 고등어조림 같은 거 해도 굉장히 맛있게들 드세요. 총각김치 나오기 전에 ‘청무’라는 게 나오는데, 하얗게 청무 김치를 담그면 맛이 그만이에요. 또 추석 쇠고 나면 고들빼기가 굉장히 맛있거든요. 영양가도 많고 그런 김치는 집에서 해 먹기가 힘드니까 여기서라도 맛있게 드시고 가면 좋겠다 싶어서 손이 많이 가도 즐겁게 만들고 있어요.” 

식당을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처음에는 다 힘들었어요. 찬물에 손 담그는 것도 힘들고, 재료 가격이 올라갔을 때도 힘들었고요. 특히나 손님들의 반응이 좋지 않을 때는 기운이 빠지죠. 지금은 하루하루 손님을 맞이하는 게 굉장히 즐거워졌어요. 제가 얼굴 표정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거울을 보면서 자주 느껴요. 예전에는 인상 쓰는 얼굴이었는데 요즘은 환한 얼굴로 변한 것 같아요.”

식당에서 가장 보람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음식 하는 사람의 최고 행복은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거예요. “사장님 잘 먹었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 말고 더 필요한 게 있을까 싶어요.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즐거워요. 제가 요즘 얼굴빛이 환해진 것도 다 그 덕분이에요.” 



전혜빈 기자 heavin012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