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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핵심 기술-소재 개발해 공급망 안정화

입력 | 2024-10-30 03:00:00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엘티메탈주식회사가 개발한 도금액.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제공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는 수출 증가율 9.1%를 달성해 세계 10대 수출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수출 증가를 견인한 반도체는 연말까지 1350억 달러(약 187조 원)의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이 기대되는데 AI 관련 전방산업의 성장에 따른 메모리 수출 급증이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하지만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하면 글로벌 공급망의 교란을 야기하는 미중 갈등, 중동 분쟁 격화와 같은 통제 불능의 외부 영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AI 반도체가 급부상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 생태계의 체질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1등이라는 성적표를 거머쥐고도 반도체 업계가 안주할 수 없는 이유다.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인 첨단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정부는 그간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2022년 7월), 국가 첨단산업 육성전략(2023년 3월) 등을 통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를 위한 테스트베드로서 첨단반도체기술센터 구축, 기술 선도형 연구개발(R&D) 확대, 소재·부품·장비 금융지원을 위한 반도체 생태계 기금 신규 조성 등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자립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발표한 바 있다.

금 범프 도금 소재를 적용한 웨이퍼를 검사하는 엘티메탈 주식회사 직원.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제공

특히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 성과가 두드러진다. 엘티메탈 주식회사는 전량 일본에 의존하던 핵심 소재인 금(Au) 범프 소재를 사업 지원을 통해 개발에 성공했다. 더구나 기존 일본 제품에 비해 150% 이상 수명을 연장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국산화함으로써 전방산업인 TV, 모바일, 전장용 디스플레이 패널 등의 발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식회사 시노펙스가 개발한 나노급 CMP 슬러리 정제용 필터.

주식회사 시노펙스가 개발한 나노급 CMP 슬러리 정제용 필터.

반도체의 집적화, 미세화 및 배선 구조의 다층화에 따라 반도체 상부와 하부 간 높낮이 차이가 증가해 이를 평탄화하는 화학·기계 연마 공정(CMP)이 중요해지고 있다. 해당 공정은 웨이퍼 표면에 CMP 슬러리라는 액체를 흘려 울퉁불퉁한 요철을 평평하게 연마하는 ‘사포질’과 상당히 유사하다. 하지만 슬러리 내에 존재하는 연마제 입자가 크거나 뭉치게 되면 웨이퍼 표면에 미세 스크래치가 발생해 제품의 불량을 유발하므로 슬러리 필터를 통한 입자 미세화 기술이 필수이다.

주식회사 시노펙스는 글로벌 경쟁사(일본 T사) 대비 공기 투과도가 18%가량 우수한 평균 섬도(굵기) 500㎚대, 평균 기공 4.8㎛의 부직포 원자재 제조 기술을 확보해 기술 자립화에 성공했다. 또한 70㎚ CMP 슬러리 필터 및 모듈 개발까지 완료해 국내 수요 기업에 초도 양산품 공급 등 빠르게 국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후성에서 개발한 반도체급 식각용 가스 소재.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제공

반도체 식각 공정은 웨이퍼에 액체 또는 기체의 부식액을 이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제거한 후 반도체 회로 패턴을 만드는 핵심 공정이다. 최근에는 나노 단위로 반도체의 집적도가 높아짐에 따라 회로 선폭 역시 미세해져 수율을 높이기 위해 습식보다는 건식 공정이 각광받는다. 우리 반도체 업계는 이러한 건식 식각을 위한 핵심 소재인 불화계 반도체 특수 가스를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는데 ㈜후성에서 높은 식각 속도를 갖는 건식 식각 가스 제조 기술을 개발해 국내 공급망을 안정화했다. 또한 최근 개발된 신규 친환경 식각 가스는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매우 낮아 현재 고집적화되고 있는 반도체 시장에 지속가능한 소재로 평가받고 있다.

“무어의 법칙은 완전히 끝났다”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말처럼 반도체는 공정 미세화의 한계에 부딪혔다. 2년 주기로 반도체 칩의 집적도가 2배가 된다는 반도체 업계의 가설을 정면 부정한 셈이다.

무어의 법칙 종말에 대한 돌파구로 떠오른 것이 바로 첨단 패키징 기술이다. 미세화 한계뿐만 아니라 AI 기술 발전에 따른 고성능·다기능·저전력 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라 개별 칩들의 단일화가 요구되면서 반도체 첨단 패키징이 곧 반도체 업계의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다만 국내 반도체 생태계는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상당히 취약한 것이 뼈아픈 현실이다.

반도체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산업부는 발 빠르게 첨단 패키징 기술 역량 강화에 서두르는 모양새다. 특히 ‘반도체 첨단 패키징 선도기술개발 사업’이 올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내년부터 7년간(2025∼2031년) 추진될 예정이다. 동시에 독일 프라운호퍼, 미국의 퍼듀대 등 해외 반도체 전문 연구 기관과 국제 공동 R&D를 통해 반도체 후공정 첨단 선도 기술 확보를 위한 사업 역시 올해부터 추진 중에 있어 반도체 초격차 역량 개발에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당 사업을 전담하는 산업부 산하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의 전윤종 원장은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생태계의 경쟁력이 곧 반도체 기술 초격차의 가늠자이다”며 “첨단 패키징 선도 기술이 현재 답답한 흐름의 반도체 산업에 돌파구가 될 것이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의 치열한 기술개발과 정부의 첨단 반도체 R&D 사업이 시너지를 발휘해 흔들림 없는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희 기자 hee31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