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넘는 콘텐츠] 〈15〉 드라마 ‘정년이’ 원작 웹툰 비교 웹툰서 다룬 동성애 암시 장면 생략… 금수저 동료와 라이벌 강조해 대체 원작이 표현 못한 공연장면에 귀호강… 소리꾼 “3년 배운 김태리, 타고났다” 엄마 문소리 비밀도 늦게 알게 설정
드라마 ‘정년이’ 중 춘향전에서 방자를 연기하는 윤정년(김태리). 배우 김태리는 “평소에 내지 않은 성량을 내고 생전 처음 듣는 노래를 공부하며 판소리의 매력을 알게 됐다”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성격이 동력이 됐다”고 했다. tvN 제공
“울지 마쇼. 이쁜 얼굴 마 미워져 부렀나.”
1950년대 서울의 한 거리. 사내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른 소녀 윤정년은 가냘픈 외모를 지닌 또래 소녀 권부용을 이렇게 위로한다. 부용이 거리에서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본 정년이 끼어들어 대신 싸워주고 구해준 것이다. 부용을 위로하기 위해 손수건까지 챙겨 주는 정년은 실제론 여자지만 마치 숙녀를 보호하는 ‘멋쟁이 신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 부용은 자신을 구해 준 소리꾼 정년에게 푹 빠진다. 부용은 국극 공연이 끝난 뒤엔 정년을 찾아가 “앞으로 영원히 널 응원할래”라며 백합(여성 동성애를 의미)을 건넨다. 정년이 국극단에서 쫓겨나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전향하러 간 뒤에도 정년이 대배우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빨리, 빨리 (공연을) 내게 보여줘. 내가 아직 여학생이어서, 너를 진심으로 축하해 줘도 이상하지 않을 때”라는 부용의 대사에 비춰보면 둘 이야기를 사랑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여자가 좋다” 같은 부용의 혼잣말에서 느껴지듯 2019∼2022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웹툰 ‘정년이’엔 동성애 코드가 농후하다.
웹툰 ‘정년이’ 표지(왼쪽 사진)와 동명의 드라마 포스터. 웹툰엔 허영서, 윤정년, 권부용 3명(왼쪽부터)이 주연으로 등장하지만, 드라마는 부용을 제외하고 정년(김태리)과 영서(신예은) 2인 라이벌 구도로 각색됐다. 네이버웹툰·tvN 제공
대신 드라마는 정년(김태리)이 성공하기 위해 라이벌 허영서(신예은)와 경쟁하는 구도를 부각했다. 웹툰이 정년, 영서, 부용의 3인 구도라면 드라마는 정년, 영서 2인 구도로 압축한 것. 드라마를 연출한 정지인 PD는 올 8월 언론 인터뷰에서 “각색 과정에서 부용이 사라졌지만 부용이 갖고 있던 정서는 다른 캐릭터에 녹이는 식으로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며 “드라마 ‘대장금’(2003년)의 장금(이영애)과 금영(홍리나)처럼 드라마 ‘정년이’는 정년과 영서의 관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웹툰은 여성으로만 구성된 배우들이 모든 배역을 맡는 여성국극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소리 없이 말풍선으로만 공연 장면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비해 드라마에선 배우들이 직접 부른 판소리가 시청자의 시선을 끈다. 예를 들어 ‘춘향전’에서 정년은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같은 대사로 너스레를 떠는 방자 역할을 제대로 소화한다. 김태리는 정년을 연기하기 위해 3년간 판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김태리를 가르친 소리꾼 권송희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김태리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지만 파워풀해 소리꾼으로서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인기 국극 배우인 문옥경(정은채)의 역할을 키워 사제 서사로 확장한 것도 각색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웹툰에서 정년은 전남 목포에서 서울로 상경한 뒤 옥경을 만나지만, 드라마에선 옥경이 목포의 시장판에서 우연히 재능 넘치는 정년을 발굴하고 국극을 연습시킨다. 또 웹툰에서 정년은 어머니 채공선(문소리)이 과거 유명 소리꾼이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지만, 드라마에선 공선의 비밀을 이후에 알게 돼 모녀 갈등의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