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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혐의 압수수색 정신장애 딸만 참관… 대법 “절차 이해할 참여능력 없어 위법”

입력 | 2024-10-29 03:00:00

부친 징역 10개월 원심 파기환송
“압수수색 참여능력 관련 첫 판단”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18.07.31 뉴시스


압수수색 절차를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의 정신장애가 있는 딸만 참관한 상태에서 진행된 압수수색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대마) 혐의로 기소된 A 씨(64)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이달 8일 이 같은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9년 5월 자신의 아파트 안방 금고에 대마 약 0.62g을 보관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1, 2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초 경찰은 A 씨의 20대 딸이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포착하고 아파트 압수수색을 하던 중 A 씨가 보관하던 대마를 발견했다. 문제는 압수수색 현장에 A 씨는 없었고, 딸만 있었다는 점이었다. 딸은 2016년 1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정신질환으로 13회에 걸쳐 입원 치료를 받았고 정신장애 진단도 받은 상태였다. 2017년 서울가정법원은 딸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 결정도 내렸다. 성년후견이란 질병, 장애,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을 위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재판 과정에선 경찰이 딸의 정신장애를 알고 있던 증거도 드러났다. 압수수색 전 수사 과정에서 딸이 입원했던 병원으로부터 정신건강의학과 담당의의 진료 기록과 검사 결과 기록을 확보했던 것이다. 특히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엔 ‘조서 열람 과정에서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는지 의심돼 재차 조서 내용의 요지를 설명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대법원은 경찰의 압수수색이 위법해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주거지 압수수색 때는 주 거주자나 이웃, 지방공공단체의 직원이 참여해야 한다. 이 사건에선 A 씨의 딸이 참관했지만, 압수수색 절차를 이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참여 능력’이 없어 위법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참여하는 이는 최소한 압수수색 절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참여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 영장 집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부당한 처분이나 행위로부터 당사자를 보호하는 등의 헌법적 요청을 실효적으로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엄격히 판단하는 최근 판결 경향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압수수색 참관인의 ‘참여 능력’을 따져야 한다고 최초로 판단한 것”이라며 “최근 압수수색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절차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