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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말 걸어 운동 못해”… 헬스장-카페 ‘노실버존’ 논란

입력 | 2024-10-29 03:00:00

젊은층 호소에 70세 이상 안받아… ‘60세 이상은 제한’ 써붙인 카페도
고령층 “우리도 소비자 권리 있어… 부모라고 여기면 다르지 않겠나”
인권위 “가입 제한 등 차별말라”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제한’ 안내문이 붙어 있는 제주의 한 카페. 일부 노인 손님이 젊은 손님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하자 카페 측이 이 같은 안내문을 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출처 X(옛 트위터)


“어르신들이 말 걸어서 불편합니다. 헬스장 못 다니겠어요.”

이달 18일 서울 강동구의 한 헬스장에 ‘고령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운동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이후 헬스장 측은 ‘젊은 분들에게 인사, 대화, 선물, 부탁, 칭찬 등 하지 마세요’라는 공지문을 붙였다.

28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서울 영등포구 소재의 한 헬스장 관리자는 “2년 전부터 현재 신규 회원 중에서 7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해선 ‘저희 센터 이용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안내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회원이 운동 중 다쳐서 보험 처리한 10건 중 8건이 나이 많으신 분들”이라고 말했다.

● 늘어나는 노시니어존, 갈 곳 줄어드는 노인들

최근 고령층의 출입을 거부하는 ‘노실버존(No Silver Zone)’이 헬스장 등 스포츠 시설이나 카페 등을 위주로 늘어나고 있다. 어린아이의 출입을 거부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처럼 안전사고 혹은 시설 내 분위기를 이유로 노인 출입을 거부하거나, 일부에서는 ‘보호자 동의서’를 받은 뒤에야 입장을 허락한다.

6월엔 대구에 있는 한 4성급 호텔 헬스장이 안전 사고 우려를 이유로 만 76세 이상 노약자는 헬스클럽 등록과 이용을 금지하자 논란이 일었다. 이달 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노시니어존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 제한’이라고 써 붙인 한 카페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확산되면서 찬반 논란이 커졌다. 논란이 일자 이 카페는 일부 노인 고객이 다른 젊은 고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는 사건이 몇 차례 벌어지자 ‘노시니어존’을 선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고령층과 젊은이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77세 홍모 씨는 “고령층은 카페도 가지 말란 소리냐. 노인혐오가 커질까 봐 우려된다”며 “지금 젊은이들도 나중에는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박오순 씨(62)는 “소비자로서 돈을 내면 커피를 사 마실 권리가 있다. 노인들이 자신의 부모라고 생각하면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반면 인천에 사는 직장인 김성훈 씨(29)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게에 앉아있으면 트렌디하지 않은 곳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며 “젊은 사람들 입소문을 타고 싶은 업주 입장도 고려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정모 씨(24)는 “헬스장, 카페나 음식점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노인들을 자주 봤다”며 “젊은이들이 꺼리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 인권위 “고령자 차별 말라” 권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8일 ‘스포츠시설의 65세 이상 회원 가입 제한은 차별’이라며 입장문을 냈다. 인권위에 따르면 68세 진정인은 올 1월경 5년째 일일권을 이용해 다니던 서울 강남의 한 스포츠클럽에 1년 회원권을 구매하려고 했으나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인권위는 해당 스포츠클럽 사장에게 ‘고령자의 체육시설 참여가 배제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스포츠클럽 측은 “고령 회원들의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 등 때문에 가입을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스포츠 시설에서의 안전사고 발생률이 반드시 나이에 비례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러한 이용 제한이 고령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상업시설 등에서 노인 배제를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오범조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노년층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위축되는 시기”라며 “노시니어존처럼 눈에 띄는 차별 요소는 이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사회적 비용 부담도 덩달아 커진다”고 말했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천종현 한국외대 영미문학번역학과 졸업
조승연 인턴기자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