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내년 1월 2일부터 첨단반도체,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대(對)중국 투자를 차단하는 내용의 투자제한 규칙을 28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다음 달 5일 미 대선 승자와 관계없이 중국과의 첨단기술 ‘디커플링(decoupling·분리)’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한국 등 동맹국에도 중국 투자를 제한하라는 압박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중국 고율 관세를 언급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더 강력한 투자 제한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한다.
● 중국의 첨단 기술 분야 추격 차단 의도
이에 따라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 시민, 영주권자 등은 반도체 분야에서는 집적회로 설계 및 제조, 슈퍼컴퓨터 관련 분야에 대해 지분 인수 및 합작투자 등에 관한 대중국 투자가 전면 차단된다. 양자컴퓨터에서는 주요 부품 개발 및 양자 통신 체계, AI에서는 군사·정보수집·감시 목적을 위한 투자 등이 금지된다. 미국인이 군사 용도의 AI를 개발하는 중국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 또한 금지했다. 이를 위반할 때는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최대 36만8136달러(약 5억 원)의 벌금도 부과받을 수 있다.
다만 중국 첨단 기술 기업상장 주식에 대한 투자와 미국 기업이 이미 중국에 두고 있는 자회사의 기존 운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내부 거래에 대해선 투자에 예외를 뒀다. 또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투자 및 수출통제 정책을 갖춘 국가들과의 협의를 통한 투자도 일부 허용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규칙에서 중국, 홍콩, 마카오를 ‘우려 국가’로 지정했다. 대만을 제외하고 사실상 중화권 전체에 대한 미국의 첨단 기술 투자를 금지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미국이 강도 높은 투자 제한 조치에 나선 것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격할 가능성을 최대한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폴 로즌 재무부 투자안보 차관보는 “AI와 반도체, 양자 기술은 차세대 군사·정보·사이버 보안의 핵심”이라며 “이러한 기술이 미국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국가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 한국 기업 불확실성 커질 수 있어
그러나 미국이 동맹국에 대해서도 중국과의 기술 협력에 대한 투자 제한 강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국과 중국 기업 간의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바이든 행정부는 양자컴퓨터, 첨단 반도체 제조 관련 핵심 기술 수출 통제에 관해 미국과 유사한 수출 통제 제도를 갖춘 일본, 독일 등의 기업에는 미국의 허가 없이 기술 수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한국은 제외됐다.
한편 현대자동차, 일본 도요타, 독일 폴크스바겐, 미국 제너럴모터스 등이 속한 미국 자동차혁신연합(AAI)은 최근 미 상무부에 중국산 ‘커넥티드카’ 수입 제한 규제를 최소 1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3일 “중국산(産) 통신 장치와 같은 자동차연결시스템(VCS) 부품이 설치된 차량은 2030년식 모델부터 미국 수입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1월 20일까지 최종 방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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