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곳간 든든히 지키던 우파 정부 이제는 좌파 정부보다 무책임해 국채 늘리는 인상 안주려 기금 건드리고 마구잡이 씀씀이로 공적보험까지 위협
송평인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 초반 조원동 경제수석이 “세금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라는 솔직한 말을 했다가 지지세력에게 혼이 났다. 이후 보수 정부는 세수 확보에서 철저한 무능함을 보이고 있다.
깃털 발언이 나온 건 우파 정부까지 복지 지출에 가세해 ‘좌파 정부 것 받고 따블로’로 지르면서 곳간이 비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가채무가 부담스럽게 늘기 시작한 것은 박 정부 때부터다. 박 정부 첫해 약 440조 원에서 마지막 해 660조 원으로 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속도가 붙어 마지막 해에는 1000조 원을 훌쩍 넘겼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줄기는커녕 임기 반을 살짝 지난 올해 말 1200조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조세부담률은 문 정부 때 크게 올랐다. 2017년까지만 해도 수십 년간 16∼18%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조세부담률은 문 정부 때 처음 20%를 돌파해 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 22.1%까지 올랐다가 윤 정부에서 2023년 19.3%로 떨어졌다. 국민으로서야 세 부담이 줄어드니 좋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채무가 급속히 늘어가는데도 조세부담률이 줄어드는 걸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기업이 글로벌하게 경쟁하는 시대에 법인세 감면은 불가피하지만 법인세는 경기 부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안정적인 세수 확보 방안이 못 된다. 국가 간 법인세율이 수렴한다고 가정할 때 법인세수는 매년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평균 성장률 정도로만 늘 뿐이다.
문 정부는 돈을 펑펑 써대기는 했지만 욕을 먹으면서까지 세금을 더 거두려 노력했다. 법인세 인상 같은 착오적인 증세도 있었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렸다. 공급이 아니라 세금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생각은 잘못됐지만 집값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보유세를 현실화했다. 금융투자소득세를 신설해 보려 한 것도 문 정부다. 다 논란이 있지만 세수를 확보하려 했다.
윤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대책 없이 세금 낮출 궁리만 했다. 그렇다고 씀씀이를 아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문 정부와 비슷하게 써대고 있다. 돈을 쓸 곳에 제대로 썼냐 하면 그마저도 아니다. 병사 월급 200만 원처럼 돈을 써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기는커녕 군의 기간(基幹)인 초급 장교와 부사관의 대거 이탈을 초래하는 정신 나간 지출도 적지 않다.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국채를 발행해서 세입-세출이라는 대차대조표상에서 해결하는 것이 정상이다. 윤 정부는 결손을 메꾸기 위해 외평채 기금 등 각종 공공기금에 손을 대는 나쁜 버릇까지 들였다. 지난해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또 그러고 있다.
경제부총리 본연의 역할은 국가의 곳간지기다. 좌파 정부의 곳간지기는 곳간 열쇠를 정치권에 맡긴 것이나 다름없이 처신했다. 우파 정부의 곳간지기는 이명박 정부 때의 강만수까지만 해도 경제 논리를 우선하는 듯 보였으나 박 정부에서 정치인 최경환이 오면서 망가지기 시작하더니 윤 정부의 추경호 최상목에 이르러서는 존재감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