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구성 바꿔라” “배당 늘려라”… 기업 지분 1% 확보뒤 경영권 공격 2년새 10곳→49곳으로 늘어나 野, 상법 개정안 정기국회 처리 방침… 집중투표-감사위원 분리선출 추진
#1. 이달 15일(현지 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계 헤지펀드 팰리서캐피털이 SK스퀘어 지분을 1% 이상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팰리서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소송 사태로 이어졌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 출신이 2021년 설립한 행동주의 펀드다. 팰리서는 최근까지 SK스퀘어에 이사회 구성을 바꾸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 최근 국내 대표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도 약 400억 원을 투입해 두산밥캣 지분 1% 이상을 확보했다. 그 후 두산밥캣이 두산로보틱스와 합병을 추진하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대비해 마련했던 준비금인 1조5000억 원의 자금을 배당 확대에 쓰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일각에선 “행동주의 펀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이상 해외 주주 연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주주들은 글로벌 펀드의 주주 제안을 중심으로 뭉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SK스퀘어 이사회를 장악하면 SK하이닉스 경영에도 간섭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초 한국 주식 시장의 저평가,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들이 주주 이익 보호를 강화하는 조항을 법에 넣자는 취지에서 상법 개정안이 추진됐다. 현행 상법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에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를 위하여’라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주주 보호를 확대하겠다는 게 골자다.
재계는 주주 가치를 올리는 ‘밸류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주주 충실 의무’는 부작용이 크다고 주장한다. 4대 그룹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 충실 의무’ 조항을 문제 삼으면 무리한 요구조차 매번 주총 등의 표 대결을 거쳐야 하고, 소송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에 행동주의펀드 플래시라이트캐피털(FCP)이 안다자산운용 등과 공조해 KT&G에 이미 60%에 이르던 배당 성향을 100%를 초과하는 수준까지 늘려 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런 요구를 회사가 일축하면 곧바로 소송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국감이 마무리된 만큼 상법 개정안 추진을 본격화해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민주당은 이사 충실 의무 확대에 더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까지 추진 중이다.
집중투표제는 1주당 뽑을 수 있는 이사 수만큼 한 명의 이사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예를 들어 주식 1주를 가진 주주가 5명 이사를 뽑을 수 있다면, 특정 A 이사에게 5표를 몰아줄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별도의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제도다. 두 제도는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이사를 뽑을 때 소액 주주 영향력을 높여주기 위한 것이다. 대주주의 이사회 전횡을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한경협 분석에 따르면 야당 발의안이 통과될 경우 이론적으로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국내 시가총액 30위 기업 중 23개 기업 이사회에 행동주의 펀드 측 감사위원(이사)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해외 행동주의 펀드에 국내 기업 이사회 ‘진입로’가 열리게 될 수 있다”며 “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보고 대책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